겨울밤은 여전히 길고
대숲에는 서릿발이 댓잎을 이고 있는데
통점마다 붉은 몽우리
캄캄한 겨울을 뚫고 나왔다
고초는 향기로 말하고
한은 꽃으로 맺히는지
눈짐작으로도 손끝이 아리다
그리운 이의 이름처럼
저릿저릿하고 아슴아슴한 꽃
아찔해서 잠시 너를 붙잡는다
내가 만나지 못하는 동안
아주 먼 것에 대해 더듬어보는 일은
가장 아픈 뼈를 골라잡는 일
뼈에 적힌 내력을 읽어보는 일
그런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오므려 귀띔하는 어린 입술들
결국 욱신거리던 종기가 터진다
■약력: 경남 하동에서 태어남. 2014년 《시와 경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일곱 번째 꽃잎」, 「지독한 설득」 . 현재 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으로 있음.
■해설: 해설이 그리 필요치 않은 시다. 장치해 놓은 길을 따라가며 감각을 열면 시를 쓰며 댓잎 속에 사는 하동의 진효정 시인이 보인다. "고초는 향기로 말하고/한은 꽃으로 맺히는지/눈짐작으로도 손끝이 아리다"에서 이미 이 시는 전통적인 정한을 통해 감각 최상의 눈짐작(시각)을 손끝(촉각)으로 홍매를 재창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매에 다가가는 시인의 심리적 거리가 애달픔을 물씬 느끼게 한다. 이어서 더듬어보는 일은 결국 "가장 아픈 뼈를 골라잡는 일"이라고 시인이 진술하는 걸로 보아 홍매는 보는 것이 아니라, 속속 뼈에 사무친 아픔을 만지는 것. 그런 행위 뒤에야 홍매는 사랑이 그리운 시인의 귀에 어린 혹은 여린 입술로 어떤 전언을 들려줄 테니까. 결국 종기가 터지는 것은, 곧 홍매의 모양이고 또한 터져야 통증도 아물게 하는 것.-<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