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우리나라 교육문화 이대로 좋은가?
<대구논단>우리나라 교육문화 이대로 좋은가?
  • 승인 2011.04.24 14: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은규 대구보건대학 안경광학과 교수

얼마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올해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한 엄마가 담임교사로부터 반 아이 중 한글을 모르는 게 자신의 딸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주변 학부모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학습지 하나 안 시키고 뭐했냐?”는 타박만 들었다면서 이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읽기, 쓰기를 배우도록 되어 있지 않냐”며 “외눈박이 원숭이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단다.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도 아이를 키우면서 한글은 당연히 초등학교 입학 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왜 한글도 가르치지 않고 입학시켰냐?”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사고가 이해가 되지 않아 집에서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아내의 질타를 받아왔다. 대부분의 보통 엄마들이 볼 때 한글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생 엄마는 교육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학부모로 낙인찍혀 답답하게 여겨질 정도로 취학 전 조기교육은 너무나 보편화되어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조기교육의 현주소다.

조기 교육이 대세처럼 굳어지면서 유아기에 국어는 물론 영어, 수학까지도 웬만큼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에 의하면 유치원에서는 읽기, 쓰기를 배우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조기 교육에 대한 폐해가 심각하게 논의되면서 일선 유치원에서 교육 과정에 맞는 수업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주로 방과 후 학습을 통해 이뤄지는 선행학습까지 막기는 어려운 듯하며 유치원 입학 전 어린이집 교육이나 학습지 등을 통해 독서교육은 물론 영어, 수학 교육까지 상당부분 이뤄지고 있는 실정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읽기, 수학,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1, 2위를 하는 핀란드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단계에서는 문자 교육이 오히려 집중력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금지돼 있고, 독일 등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도 초등학교 취학 전 문자 및 수 교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따른다. 특히 영재교육법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에서도 유치원 과정까지는 문자나 수를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영어니 독서니 교육 경쟁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인데 일본에서는 최근 독일 등의 자연주의식 유아교육법이 정착되어가는 추세이며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흙도 밟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땅이란 단어부터 가르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 여겨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바로 알파벳을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소리라며 답답해하면서 제발 집에 붙어있는 동안만이라도 아이한테 책 좀 많이 읽어주라는 주문을 받는다. 2000년 무렵부터였을까? 처음엔 영어 비디오로 시작한 조기교육이 몇 년 후엔 한글과 수학, 그 다음엔 한문, 그리고 최근엔 독서로 넘어온 양상을 보인다. 조기 교육의 종류나 도구만 바뀌었을 뿐 일찍 가르치면 똑똑해질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과도한 교육열은 똑같다.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아이한테 무조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적정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는 “유아들에게 많은 책을 읽히는 것이 돈 들여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일”이라 조언하는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 두 돌이 지나야 인형놀이 정도를 조금씩 시작할 수 있고 적어도 세 돌이 돼야 자기 상상을 얹을 수 있기 때문에 글을 보고 제대로 독서를 하는 연령은 초등학교 2, 3학년쯤, 그것도 빠른 여자 아이들의 경우라는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공감한다. 잘못된 조기독서로 유사자폐나 책 중독, 공격성이 끓어오르는 아이를 만들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사례를 여러 건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사소한 물건 몇 개만 가지고도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큰 아이는 문자교육 안 시키는 보육기관에서 나무에 물이나 주며 키웠고, 둘째는 문자교육 하는 일반 유치원에 보낸 엄마의 이야기다. 세 돌 때 버스가 지나가면 큰 아이는 “엄마! 보라색 버스는 보라색 차고로 가네!”라며 스스로 분류하고 모으고 다 했던 반면 훨씬 똑똑했던 둘째 아이는 `한일교통’이 끝이었고, “글자 말고 다른 건 안 보여? 무슨 색이지?”하고 물어야 다른 걸 볼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도시에서 조기교육에 시달리는 아이가 불쌍하게 여겨져 난 몇 주 전 초등학교 1학년 아이 하나를 농촌 시골학교로 전학시켰다. 아직 얼마 되진 않았지만 밝고 건강하게 뛰어놀며 자라는 모습에 매우 만족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