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대구논단>“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승인 2011.05.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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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건(대구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봄꽃들이 분연하게 올라오는 요즘, 막 대학의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의 모습은 전쟁을 치룬 분위기다. 학점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나의 대학시절을 기억하면 요즘의 학생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점수로 모든 것이 평가되어버리는 오늘날 대학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조차 하다.

몇 년 전 한 학생이 걸었던 전화를 기억한다. 한 학생이 시험시간에 `훔쳐보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냐고 했더니 친구라고 한다. 그런데 왜 전화를 했냐는 질문에 그는 친구의 성적을 재고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확인할 바가 없어서 연구실 방문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요즘의 대학은 모든 것이 숫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 역시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논문의 수로 능력을 평가받고 있으며, 대학별 특성화는 무시된 채 각 대학의 능력과 우수성은 계량화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나보다 남’을 강요하거나, 교수들에게 질 높은 강의를 종용하기는 힘들다.

기업화의 논리로 무장된 대학에서 개별적 특성화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를 걸었던 그 학생에게 내가 가했던 친구에 대한 배려, 우정, 이타심 등을 더한 충고의 기억들이 참 부끄러워진다. 이런저런 요즘의 학생들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독일의 천재화가 뒤러(Albrecht Durer)의 `기도하는 손’의 사연이 시선 안에 들어온다.

500년 전 독일에 장래가 촉망되는 뒤러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미술에 재능이 있었으나 둘은 너무 가난했다. 생계와 그림을 병행해야 하는 이들에게 현실은 너무 잔인했다. 가난한 생활을 전전하는 이들은 한 사람은 그림을 계속 공부하고 또 한 사람은 생활비를 책임지고, 훗날 화가로 성공을 한 사람은 생활비를 댄 사람을 후원하여 그림 공부를 책임지자고 한다.

어떤 사연으로 뒤러가 먼저 그림공부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서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 미술이론가인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인 뒤러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유럽에서 화가로 유명해진 그는 자신을 믿고 생활비를 책임져 준 친구와 해후를 한다. 그리고 뒤러는 문득 친구의 손을 보게 된다. 화가로서 섬세한 붓놀림을 할 가늘고 예민했던 친구의 손은 이미 사라지고, 긴 노동으로 돌 같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휘어지고, 비틀어진 손가락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뒤러는 친구의 기도를 듣게 된다.

“주여, 감사합니다. 알브레히트가 드디어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그림은 비싼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알브레히트는 이제 제 차례가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지만, 하나님 저는 오랜 노동으로 더는 붓을 가지고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못한 그림 공부와 제가 이루지 못한 진실한 화가의 길을 알브레히트가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뒤러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 친구의 손임을 깨닫고, 그 친구의 상처받은 손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 `기도하는 손’은 그렇게 세상에 탄생하게 된다. 500년 후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 옆 사람을 밟아야 내가 일어설 수 있는 잔인한 현실은, 당장의 성과와 쾌락이 편하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데 누구하고 우정과 사랑을 할 수 있겠냐고 한다. 이 봄날에 이 시대의 고단한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서, 직업이 없어서, 장래가 불투명해서, 딛고 있는 자리가 불안하겠지만, 그래도 내게 희생해 줄 그리고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친구와 우정 깊은 사랑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다.

당장의 급급한 숫자 채우기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 없다. 친구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가족에게서 나를 위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어려운 현실을 넘어설 수 있게 적어도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고, 심장에 인간의 피가 돌 수 있게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부여잡아 줄 수 만 있다면 하는 어려운 상상을 한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는”(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런 친구가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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