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가정의 달에
<대구논단>가정의 달에
  • 승인 2011.05.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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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학 안경광학과 교수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54세에 IMF를 맞아 해고된 한 회사원이 있었다. 그때 그가 가족들에게 했던 말은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 내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회사에 매여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못 가졌고 취미생활도 못했는데 이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잘 됐다.”라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실직 초기에 그는 여행도 다니고, 가족과 함께 외식도 했다. 그러나 3개월쯤 후부터 그는 말을 잃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그 3개월 내내 자살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쉽게 죽지 못한 이유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그가 54회 생일을 맞았을 때 가족들은 아빠에게 힘을 주기로 했다. 네 식구가 조용한 찻집에 앉았을 때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 54회 생일에 우리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 종이에는 그 동안 남편에게 고마웠던 일,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일 54개가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다 읽고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곧 이어 대학생 딸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다. “저는 저를 이만큼 키워주신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 때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계속해서 고등학생 아들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다. “아빠는 우리 가정에서 보석과 같은 분이예요.” 그러자 결국 아빠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 그는 다시 일어섰다. 삶의 기반도 자존심도 무너질 대로 다 무너졌는데 자기에게는 아직 소중한 가족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후 그는 다시 든든한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되찾고 작은 행복의 조건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번 달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그리고 성년의 날과 부부의 날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많은 노인들과 아이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고 가정의 달을 무색케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특히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버이 날인 지난 8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부부가 함께 목을 매 숨진 사건이나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올케를 흉기로 찔러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 등은 가정문제 중 특히 노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노인들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는 못할망정 5명 중 1명꼴로 방임과 방치,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우리나라가 과연 `동방예의지국’이 맞는가,

나중에 본인들이 자식들로부터 그 이상의 대접과 피해를 당할 각오는 되어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하는 의문까지 생긴다. 지난해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 학대 상담건수는 4만6,855건으로 2년 전인 2007년에 비해 70%나 증가했는데 이런 추세는 계속될 듯하다.

2010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19.2%가 학대를 경험했다고 고백했고 노인복지법에 금지된 학대를 경험한 노인(5.1%) 가운데 65.7%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2.5%만이 전문기관이나 경찰을 통해 사회적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학대를 가정사로 여기거나 남에게 알리기 싫은 수치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노인들이 가족들의 구박이나 폭언 등을 견디지 못하면 흔히 자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체적ㆍ경제적ㆍ성적 학대와 유기 및 방임을 학대로 규정한 노인복지법에 정신적 학대를 추가하고 경제적 학대의 범위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일부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2009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학대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삶을 포기한 61세 이상 노인이 192명이었고,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8배가량 높았는데 한국 부모들의 맹목적적 자식사랑 정서상 드러나지 않은 학대까지 감안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어버이가 있어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에게 쏟아 붙는 왜곡된 사랑과 정성, 지나칠 정도로 과열된 조기교육과 사교육 열풍 등을 지켜보면 참 안타깝다. 아이들은 모방의 귀재들이어서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배우고 따라한다. 백만 권의 책보다 부모의 올바른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더 유익하다. 재산보다는 재산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물려주어야 하고 자식을 진정 사랑한다면 선생님을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을 우리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며칠 남지 않은 5월, 다시 한 번 부모님과 가족들을 돌아보고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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