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금암서원 뒷산에서
<대구논단>금암서원 뒷산에서
  • 승인 2011.07.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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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일전에 달성 다사면 매곡리에 있는 금암서원(琴巖書院)을 찾았다. 이 서원은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 1530~1593) 선생과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1558~1594) 부자(父子)를 같이 모신 곳이다. 조선 영조 40년(서기 1764년)에 세워졌던 이 서원은 그 뒤 고종 8년(1871년) 나라의 명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일부만 복원되어 있다.

서원이 없어질 당시 서원에 붙어있던 당호 간판을 묻었다는 것을 알리는 `낙애선생매판소(洛涯先生埋板所)’라는 표지 비(碑)가 지금도 남아있어 훼철 당시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다. 이 비 둘레를 발굴한다 해도 이미 14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라 간판이 온전히 남아있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후세에 언젠가는 복원될 것을 그리며 이 비석을 세웠을 것이다.

사람들이 돌에 글자를 새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한과 그리움이 맺혔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서원 뒷산에 있는 임하 선생과 낙애 선생의 묘비 비두(碑頭)가 예사롭지 않았다. 비두에는 여느 비석과는 달리 기와집이 새겨져 있고 연꽃 봉오리까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무딘 눈으로 보기에도 여간 정성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위쪽 비석의 머리는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 고색창연한데 아래 쪽 비두는 요즘에 조성한 것이었다. 서원을 지키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손 정봉근(鄭奉根) 화백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누군가가 밤중에 훔쳐 가버렸다는 것이다. 비 오는 밤에 자루에 담아 끌고 내려간 흔적을 이튿날 발견하고 지금껏 수배 중에 있다고 하였다. 아름다운 문화재 그것도 남의 무덤 앞을 장식하고 있는 묘비의 비두를 훔쳐갔다는 데 대해 울분이 솟아올랐다.

언젠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 마당에 있던 정요대(庭燎臺)를 뽑아간 도둑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울분이 느껴졌다. 마당을 밝히는 돌 등잔대를 훔쳐가 버린 것이니 깜깜하여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남에게 그처럼 큰 실망감을 주고도 자기는 돈을 벌어 잘 될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라고 생각된다.

제발 문화재를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도둑들은 당장 원상 복구하기 바란다.
금안서원에 모셔진 임하 선생은 선조 3년(1570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참봉(參奉, 종9품)이 되었으나 학문이 부족함을 내세워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한강 정구 선생과 가깝게 사귀었으며 성리학(性理學)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강 선생은 청주정씨(淸州鄭氏)인데 임하 선생은 동래정씨(東來鄭氏)였다.

그는 뜻이 바르고 문장이 뛰어났지만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면서 여러 학자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道義)를 토론하는 한편 금호강가에 서당을 열고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큰 공을 세웠다.

그의 아들 낙애 선생도 학문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효행이 극진한 선비였다. 그는 부친의 권유로 한강 선생 밑에서 공부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슬픔을 참지 못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친과 함께 의병으로 참가하였다.

문장도 뛰어나 선생의 <용사일록(龍蛇日錄)>, <조간일기(遭艱日記)>와 <시조술회가구수(時調述懷歌九首)>는 학계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바 있다. 지금도 그의 시비(詩碑)는 금암서원 뒷산 선영에 있으며 묘갈명(墓碣銘)은 백포(栢浦) 채무(蔡楙, 1588∼1670)선생이 찬(撰)하였다. 없어진 비두는 바로 낙애 선생 묘비의 비두였다.

이러한 위인들과 관계 깊은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것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부디 문화재가 제자리로 복원되고 그 정신이 길이길이 전해지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조상의 묘와 서원을 지키며 향토에서 예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정봉근(鄭奉根) 화백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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