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위대한 대한민국”
<대구논단>“위대한 대한민국”
  • 승인 2011.07.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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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건 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점을 명심 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의 작가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한 장면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고 명시되어 있다. 최근 모 은행에서 `고교출신 대규모 채용’ 광고와 관련하여 위의 문장들을 떠올린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현실 안에서의 풍경들은 남을 비판할 때 항상 나의 유리한 입장만을 고집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은 해택 받은 소수의 국민으로부터만 나오는 듯하다.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에서 학력차별의 흔적들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하여 고교출신 채용공고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차별의 상처가 노골화되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2007년 우리는 학력차별과 관련하여 한차례의 홍역을 치룬 적이 있다. 모 대학 S씨의 허위 해외 학위가 드러나면서 여기저기서 학력과 관련한 고발들이 난무했었다. 많이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자격증이 되고 차별의 근거가 된다면 배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배운 자가 배웠다는 이유로 혜택을 요구하고 못 배운 자는 바로 그 때문에 또 다른 불이익을 받는, 이중의 혜택과 이중의 불이익 속에서 살고 있다. 차별하는 자는 우쭐대고 차별받는 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다.

나 역시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그것이 가끔 나를 우쭐대게 하는 것을 부인 할 수는 없지만 대학 안의 생활에서 대학 밖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외면했던 나의 태도가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이 잠시잠깐의 연민의 감정이 2004년 모 신문의 기사를 꺼내들게 한다.

모 정치여당의 L의원이 2004년 선거법 위반으로 위원직을 물러난다. 그해 사월 총선에서 그는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사용하는 학력 허위기재로 구속 수감된다. 그는 충남의 어느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를 마쳤다. 농사를 짓다가 상경한 그는 공장 노동자, 밤무대 가수 생활을 했고, 1980년부터 성남 지역에서 과일 노점상, 목수 보조 등의 막일을 했다. 그러다 성남 주민교회 L목사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떴고, 이후 운동가로 변신해서 80, 90년대 수도권 빈민 운동을 이끌었다고 한다.

소외된 빈민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고, 그 바리케이드 너머의 투쟁에도 당당했던 그를 이토록 왜소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싸우기 힘든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적이고, 나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적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그의 고백처럼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놈이라고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무학’의 부끄러움이 괴물이 되어 한 운동가를 먹어치운 것이다.

가난 때문에 채우지 못한 학력이 빈민 운동가를 무너뜨린 이 슬픈 현실에서 최종학력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이력 역시도, 그가 빈민이었기 때문에 얻었던 불명예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자격증처럼 통하는 고등교육의 희망이 한 개인의 책임과 더불어 사회가 이들에게 윤리적 범죄를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부재할 때 가장 먼저 피폐해지는 것은 바로 무관심이다. 그 무관심의 덩어리가 부풀어 올라 이 민주주의 사회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소외된 빈민들이 존재한다. 나처럼 다 유리한 입장이 아니면 시선을 외면해,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거나 사회의 잉여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이 자본의 논리인 듯 보인다. 사람들 간의 단절과 괴리는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절망적 현실을 통해서 주어진 의미의 덩어리들이 나의 일부로 맞대면하기란 오히려 사치스럽거나 낭만적인 감정으로 치부되어져야 할 듯하다.

“특권이 점유한 템즈 강가를/ 특권이 점유한 거리들을 나는 헤맨다/ 그리고 마주치는 모든 얼굴에서/ 약함의 모습, 비애의 모습을 본다/ 모든 사람의 울부짖음에서/ 공포에 찬 아이의 울음에서/ 모든 목소리에서, 모든 금지에서/ 마음에 포박된 수갑 소리를 나는 듣는다.”(블레이크(William Blake) <런던>(London))라고 영국의 19세기 한 시인이 산업혁명이 후 외양적으로 민주주의로 급부상해가는 영국의 런던사회를 다수가 누려야하는 권리를 소수가 누리는 특권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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