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나옹선사 출생지를 지나며
<대구논단>나옹선사 출생지를 지나며
  • 승인 2011.08.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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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지난 토요일 연휴를 이용하여 영덕군 창수면 미곡동에 있는 친구 집으로 피서 겸 휴가를 갔다. 친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한티재를 넘기 전 오른 골짜기를 가리키며 이곳 불미골이 바로 그 유명한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 출생지라고 알려주었다.

나옹선사라고 하면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선시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 분이 아닌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고려조에서 왕사(王師)를 지낸 선사는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무학대사의 스승으로서 고려 말 쇠퇴해 가는 불교를 중흥시키고 조선조가 되더라도 불교를 통한 자비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큰 스님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 분이다. 뿐만 아니라 내 고향 청송 진보에 수정사(水淨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 또한 바로 나옹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관심이 갔다.

친구는 선사의 탄생 설화를 들려주었다. 어머니 정씨부인이 하루는 꿈에 금빛 찬란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알 하나를 품에 떨어뜨리고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태기가 있었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세금을 내지 못하였기에 관가로 끌려가던 중 냇가에서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관원들은 아기를 버린 채 어머니만 끌고 갔다는 것이다.

고을 부사가 치마에 묻은 피의 연유를 알고는 얼른 미역과 쌀을 딸려 되돌려 보내었다고 한다. 냇가에 버려진 아기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으리라 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까치들이 날아와 보호해 주고 있더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선사는 출생부터 비범하였음이 분명하다.

선사가 태어난 불미골은 지금도 인가가 없는 깊은 골짜기였다. 아마도 당시에는 화전(火田)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한다.이로 미루어 보건대 당시 세금이 얼마나 무서웠던가를 떠올리게 한다. `가렴주구(苛斂誅求)’니 `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금’이니 하는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이런 무서운 세상이 이 땅에 엄연히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진다.

오로지 명령만 수행하려는 관원들의 목표 달성주의도 끔찍하다. 아무리 명령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갓 태어난 생명을 길가에 버리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와 다름없는 일이 오늘날도 횡행하지 않는다고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공직에 있는 우리 모두는 법규만을 내세워 비인간적인 태도로 업무 집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당시 영해부사의 인정은 칭송되어야 한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억지로 끌려 온데다 중간에 출산을 하여 초죽음이 된 산모에게 미역과 쌀을 주어 구휼한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선사가 태어난 냇가의 깊은 물을 지금도 `까치소’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탄생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이 설화에 새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민속학에서는 새가 하늘과 인간을 매개하는 상징물로 나오듯이 당시 질곡어린 현실을 훌훌 털고 새처럼 날아올라 보고 싶은 모든 민중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사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청년이 된다. 스무남 살이 된 선사는 마을에서 함께 자라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생로병사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출가하면서 마을에서 가까운 갈림길에 짚고 있던 소나무 지팡이를 꽂으며 `이 나무가 자라면 내가 살아있는 줄 알고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죽은 줄 알아라.’는 말을 남기고 비장하게 구도의 길로 나아갔다. 그 후 선사는 나라안 여러 사찰을 돌며 두루 불법을 구하고 마침내는 중국 북경에까지 가서 도를 구하게 된다.

당시 여러 형편을 생각하건대 우리에게 다가오는 깨달음의 세계는 정말로 신비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경이로움을 길이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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