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목은 선생 영당을 지나며
<대구논단>목은 선생 영당을 지나며
  • 승인 2011.08.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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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일전 서울 출장길에 종로구청 뒤쪽 길을 걷게 되었다. 회의 시간보다 시간 반 앞서 도착했기에 30도가 넘는 염천이었지만 서울역에서 정부종합청사까지 걷기로 하였던 것이다. 시청에서 곧바로 세종로로 가지 않고 시청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늘이 좀 더 짙을 것 같아서였다.

종로구청을 지나 오른쪽 조계사 방향으로 가다보니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堂)’을 알리는 홍살문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칠팔 년 전에도 이곳에 들린 기억이 어렴풋하였다. 그때에는 한국일보사를 지나 조계사 마당의 백송과 회화나무를 보러왔다가 절 뒤쪽으로 나와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한겨울이었는데 이번에는 한여름이고 종로구청 쪽에서 나무가 짙은 곳을 찾다보니 이곳에 이르렀다.

두 번 다 우연히 이곳으로 발길이 끌렸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라 여겨진다. 목은 선생이 왜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였을까? 문득 선생의 시조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곳 몰라 하노라-

망해가는 고려의 앞날을 걱정하는 노래이다. 야은 길재(冶隱 吉再),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와 더불어 고려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선생의 애끓는 회한이 담겨있다 하겠다.

목은 선생은 끝까지 불사이군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태조 이성계가 목은 선생을 회유할 목적으로 가르침을 받겠다며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성계는 목은 선생과 담소를 나누는 도중 슬그머니 일어나 불시에 용상으로 올라가 앉으려 하였다. 이성계가 용상에 앉고 목은 선생이 그 아래에 앉는다면 엄연한 군신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목은 선생은 얼른 일어나 `老夫無座處 而 長揖不配’라고 외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그 후 이방원이 임금이 되자 목은 선생은 두 아들을 잃고 만다. 그리고 여주 신륵사 근처에서 은거를 하고 있을 때에도 이방원은 독주를 내려 자결할 것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코 굽히지 않았다.

목은 선생의 출생지는 영덕 영해의 `괴시(槐市)’ 마을이다. 원래 괴시 마을은 북쪽에 호지(濠池)라는 저수지가 있어 호지촌이라 불렸는데, 훗날 원(元)나라로 가서 문명(文名)을 크게 떨치고 온 선생이 그곳 유명한 학자인 구양박사 구양현(歐陽博士 歐陽玄)이 살고 있는 괴시 마을과 비슷한 지형이라 하여 고쳐 부른 이래 지금까지도 괴시 마을로 불린다고 한다.

이로 보면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목은 선생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중국 원나라까지 두루 답방하며 학문을 넓히고 인간의 도리를 구하였다 할 수 있다.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전하여 하루에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갈 수 있지만 당시는 걸어가거나 기껏해야 말을 탔을 텐데 아무리 강건하다 하더라도 밤을 새워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외국을 간다면 석 달, 넉 달은 예사로 걸어야 했을 것이다.

문득 요즘 사람들의 사고가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의 사고에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당시 사람들은 먼 길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무엇이 옳은 삶인지 사물의 이치는 어떠한지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했을 터이니 말이다. 선생의 `여강(廬江)의 술회’라는 시를 읽어보면 그의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다.

-천지는 가이없고 인생은 덧없거늘/ 홀연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가야하나/ 여강 한 구비 산은 한 폭의 그림 같아/ 반쯤은 그림인 듯 반쯤은 시인 듯/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떠돌이 삶일진대/ 고향 따지고 인연 물을 것 없다.// 세월은 백대를 지나가는 과객이요/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다/ 내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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