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대한민국의 여름풍경
<대구논단>대한민국의 여름풍경
  • 승인 2011.08.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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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날씨가 고르지 못하고 비가 잦아지는 올해의 여름을 근근이 관통하고 있다. 주변은 눅눅하고 마음의 주름도 깊어만 간다. 뜨겁기는 하지만 여름의 작렬하는 칼칼한 햇빛이 가끔은 그립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시력이 나빠져 대한민국의 여름풍경이 흐리기만 하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투쟁으로 거리를 나섰고, 대학의 교육적 특권을 누리기도 전에 그들도 모를 빚을 떠안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전전하고 있다. 예년과 다름없이 여름 장마와 태풍으로 전국 곳곳은 대책 없이 아수라장이 되었고, 절규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나는 무사하다’며 시선을 외면했다.

어린 아이들의 밥값문제로 서울시는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를 실시하려하고 있고 한 끼당 2457원 하는 아이들의 무상급식 단가를 반대하는 동안 서울시장은 세금으로 연 간 3억이 넘는 밥값을 지불했다. 40대 증권사 차장이 주식 폭락으로 인한 투자손실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 강제 해고와 관련하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씨는 200일이 넘게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온갖 잣대를 들이대어 부실대학 운운하면서 대학을 기업 마인드화하여 `대학 주식회사’를 설립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각자가 허리띠를 졸라 매어 보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물가는 오르고 있고,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사건들의 배경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본주의 위기이다. `사람’ 편에 서야 하는 국가가 `시장’의 편에 서면서 생긴 예상된 파국이다. 대안을 찾기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만을 쫓아 `사람’이라는 단어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고속열차에서 일찌감치 하차한 이들의 일상도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며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과다한 교육비와 양육비에 대한 걱정뿐이다. 장려금을 준다고는 하지만 턱없는 일이다.

연일 방송에서는 경쟁을 부추기는 이른바 `일등’만이 살아남아야 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살포하고 있는 동안 대학은 정부의 요구에 발맞추어 `알짜, 예비, 잉여’로 나누어 학생들을 관리하려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곳 이라는 수사조차 지워버렸다. 학생들은 이런 시스템 안에서 차별과 억압을 내면화 하고 이른바 지독한 `서열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서열주의에 의해 선택되지 않으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대학등록금 문제에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진입한 학생들에게는 대물림 구조에 의해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점과 함께 서열주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의식이 작용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중하위권 대학의 학생들은 서열주의에 의해 버림받아 주체화에 이르기 어렵다는 게 작용한다.

선택된 자든 버림받은 자든 인간성 훼손의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분노와 저항’의 표현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시장과 기업의 논리를 앞세워 부실대학 퇴출이라는 명목으로 각가지 지표와 숫자들을 들이대며 대한민국의 교육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그 사이 대학은 요구된 지표와 숫자를 맞추기에 교육과는 거리가 먼 일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고, 학생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과 구성원들이 순위가 매겨지고 등급으로 분류되면서 자기 서열을 스스로 규정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맑은 시선을 상실해가고 있다. 교과부 관료들이 몇 푼의 돈으로 교육과 인간을 외면하고 대학을 저울질하는 동안 훼손되어버린 인간의 존엄성과 비루함과 굴종, 더불어 교육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헤아리고 공동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낙원을 이루어 간다는 착각을 가졌다. 설혹 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우리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낙원 밖, 썩어가는 쓰레기더미 옆에 내동댕이쳐 둘 것이다”(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라고 1975년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이야기 했던 한 소설가의 말이 2012년 이 여름에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경을 바꿔 써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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