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유명악 판관 비각 앞에서
<대구논단>유명악 판관 비각 앞에서
  • 승인 2011.08.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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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필자가 1993년 대구 상동에 있는 수성초등학교로 부임해 가니 교문 담 밑에 연청석 비석이 두엇 서 있었다. 모두 조선시대 이곳의 판관으로 있던 유명악(兪命岳)을 기리는 불망비(不忘碑)였다. 그 이듬해 여름방학을 마치고 오니 그 비석이 보이지 않았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마당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유물이란 원래 있던 곳에 있어야지 함부로 옮기면 되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하였더니 이곳 비석 역시 인근 수성동 옛 골목에 있던 것을 새로 길이 나면서 옮겨놓았던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 경북대학교에 가서 비석을 살펴보았더니 영남관찰사를 지낸 아들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 불망비를 포함해서 유명악과 관련되는 비석이 5-6기나 있었다. `판관유후명악청덕선정비(判官兪候命岳淸德善政碑)’, `판관유후명악영세불지비(判官兪候命岳永世不志碑)’, 판관유후명악애민선정비(判官兪候命岳愛民善政碑)’등 여러 비석을 보면서 이 분이 도대체 어떤 선정을 베풀었기에 이렇게 많은 송덕비가 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경북대학교에는 석빙고 중수비도 서있었는데 거기에도 유 판관이 등장하였다. 아미산(蛾眉山) 즉 지금의 동아쇼핑 건물 맞은편 언덕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의 빙고(氷庫)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새로 통나무와 짚으로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하는 초개빙고(草蓋氷庫)여서 민폐가 많았는데, 유 판관이 경상감영에 건의하여 쌀 800석을 확보하여 9칸짜리 거대한 석빙고를 건축, 영구히 부민들의 부담을 없앤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490-1번지에 우진각 지붕의 고색창연한 비각이 하나 서있어서 들여다보았더니 유 판관 송덕비가 무려 8기나 모여 있는 것이었다. 화원 지역과 현재 대구 달서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송덕비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유명악은 오늘날로 치면 대구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 판관으로 1713년(숙종 39년)부터 3년간 근무하였다. 관아 중의 일부는 바로 이곳 화원 명곡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터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지금도 이곳에 `깐마당’, `비각걸’ 또는 `창걸, 창거리, 창거래’라는 명칭이 남아있는데 `깐마당’은 `관아마당’에서, `비각걸’은 `비각 골목’에서, `창걸’은 `창고 거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관아에 딸린 식량 창고에 쥐들이 많이 몰려들었기로 이곳을 `쥐촌(鼠村)’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다.

이곳에 남아있는 유 판관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의 대표적인 것은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되자 기우제를 지내기로 하였는데, `모든 제사에는 모름지기 그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꿈에 나타난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은 다음 불을 피우게 한 것이다. 이윽고 불꽃이 피어오를 때, 정말로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단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뭄을 면하게 되자 관내 33개 방(坊)에서 각각 `화지팔방비(花之八坊碑=頌德碑)’를 세워 그 덕을 기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세금을 적게 거두고, 흉년이 들면 곡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물길을 새로 내는 등 선정을 베풀었기에 송덕비를 세움에 있어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더욱 많은 송덕비를 세울 수 있었다고 보인다.

퇴계 선생의 고향인 안동 도산 지방에는 지방 수령의 송덕비를 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퇴계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이곳 수령들이 자신의 송덕비를 세우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송덕비는 결국 지방민의 성금으로 건립되는 것이고 보면 그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송덕비에 대한 느낌을 썩 좋게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유 판관에 대해서만큼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구 지방에 유명악 선정비가 유독 많은 것에는 바로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유 판관에 대한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교육의 책임이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지역의 아름다운 스토리텔링 자료를 많이 개발하고 널리 보급해야 한다.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게 하는 것이 교육 요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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