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용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될 때마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과 함께 소설 `인간시장’의 주인공처럼 정의를 집행하는 전지전능한 신의 부재에 아쉬움이 남는다. 옛날 학교에 다닐 때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대해 배운 적이 있고 그것이 불변의 진리인줄 알았다. 조선시대 등 우리나라 옛 소설들도 대부분 이런 권선징악형 소설이다. 흥부전이 그렇고 춘향전 역시 그러하다.
권선징악형 이야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의 동화인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역시 못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도 대부분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 형식의 작품이 많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에게 권선징악의 본성이 깔려 있고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그런 형태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하고 경제와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변했고 지금은 조상들이 살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 삶이 분주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옛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권선징악이 아닌가 생각된다.
착하게 사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조차 생기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다보니 옳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을 보면 선하게 산다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착하게 사는 게 잘하는 것인지 손해를 보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워질 때도 있다. 가치에 혼란이 생기다보니 착하게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 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봐야 쓸데없는 것 같고 조금 악하게 살더라도 이익을 챙기는 게 더 나아 보이기도 한 세상이 되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지만 현실이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신앙심을 이용해 최면을 걸어 수많은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막장 목사 부자(父子)가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니는가하면 교육계의 수장이 되고자 하던 자가 돈거래로 후보단일화를 한 혐의가 포착되었고, 법과 정의를 집행해야할 법조인조차 돈벌이를 위해 탈세의 주축에 있는 것도 모자라 `성매수 흔적 없이 처리’라는 광고카피로 온라인 호객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실정이다.
세상엔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조차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공복이라 떠들어대지만 정작 이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들을 뽑아준 국민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매어 달릴 자기 보다 더 힘세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바른 판결을 내려야 할 사법부조차도 힘 있는 사람들 눈치 살피기에 바쁘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나 삼성이 더 부자가 되면 결국 산골에서 감자 심고 배추 심는 농민들이나 서울역 앞 노숙자들도 결국 형편이 나아져야 하지만 자신들이 상생해 나가야만 하는 중소 납품업체들 조차도 잡아먹으려 드는 탐욕스런 대기업들이 국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은 너무도 낭만적인 기대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광석씨의 노래를 중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물속으로 나는 비행기/하늘로 나는 돛단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오늘도 에드벌룬 떠 있건만/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 쉰다/라는 가사말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엔 오늘날 도대체 제대로 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져 있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고발, 슬픔과 절망이 강하게 베어 있는 듯하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 했던가? 돈과 권력으로 정의를 가장한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고,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순식간에 불의로 왜곡되어 버리고 마는 세상이다. 과거 `사법살인’이라 불리던 `인혁당 사건’이나 `실미도 사건’이 그러하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지금도 크고 작은 유사 사건들이 되풀이되고, 수 없는 음해와 진실의 조작·왜곡이 정치판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약자의 정의를 무참히 짓밟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한 면역성을 키워주기 위해 돈과 권력, 힘이 곧 정의라고 우리 자손들에게 가르칠 순 없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대명제(大命題)가 사람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고 실천으로 옮겨지지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에서도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만은 끝까지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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