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대구논단>“아프니까 청춘이라고?”
  • 승인 2011.09.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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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얼마 전 강의준비로 이른 아침 서둘러 들어온 연구실에서 덜 깬 아침의 졸음을 물리치고자 인스턴트커피를 타고 있는데, 학생 L군이 조심스레 고개를 조아리고 방으로 들어온다. 그는 일명 `사이즈’로 대변되는 자신의 스펙, 외모, 커리어, 성적 등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교를 옮겨 또래 보다 늦게 입학한 그는 내일모레면 서른을 바라보는 친구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막연하다며 하소연을 하였고, 부모님의 눈칫밥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고 읊조렸으며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오랜 시간을 머물다 돌아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요즘의 유행어가 사치스러워 보인다. 청춘들이 시들시들 메말라 가고 있다.

말캉말캉하고 멜랑콜리 한 감수성이 정수리까지 차오르던 나의 20대를 지금의 청춘들 위에 겹쳐 놓는다. 당시 나는 늦게 성장한 발육으로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을 수그리고 다니던 우울한 말라깽이였다. 나는 어느 시장근처의 반 지하 자취방에 틀어 박혀 뻣센 자존심으로 충만한 어느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자만과 오만에 빠져 있었다.

대학 강의실 안 보다는 대학 밖의 거리를 서성거렸고, 아무런 사상도 무장되지 않은 채 혁명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오만과 편견’은 일탈의 감정이 당장 베어내야 할 잉여로 치부되고, 이상적 감상이 이성의 칼날로 도려내야 할 과잉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대한 철없는 반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 컴퓨터 속의 네트워크와 현실 안의 세상이라는 두 가지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본다. 지금의 20대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다 보면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평소 숫기 없고 과묵하고 자의식이 강한 아이들이지만, 사이버 안의 이들은 감정이 풍부하고, 현실에 대해 건강한 비판이 있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현실 속의 자아와는 다른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면서`내 인생은 현실에서 해피엔딩이 될 수 없지만, 이 공간의 나의 삶은 모두 해피엔딩이다’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의 문제, 사랑과 결혼의 문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문제,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의 편견에 관한 문제, 이상을 향한 투쟁의 문제 등을 이 시대의 청춘들은 무방비로 떠안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기성세대는 과거 그들이 경험했을 이 문제들에 대해 청춘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저하는 듯 하다.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고, 너희만 겪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말을 건네주기에는 이들 사이의 소통의 간격은 크다.

잠시 잠깐의 판다지적 공간에서 물러나 일상의 현실 안으로 돌아온 이들은 이미 늙을 때로 늙어 버린 채 냉혹한 경제논리 시장 안에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기형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에 대한 상실감은 스스로 환상 속 인물을 만들어 원하는 대로 살아보는 대리만족의 소박한 위안뿐이다.

이들은 외적 조건의 짓눌린 기대치에 부응하고자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고 위험한 일로 치부하고, 자유롭고 젊은 감정의 로데오에 올라탈까 봐 전전긍긍하며, 감정은 그른 것이고 이성은 옳은 것이라는 가치 아래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너무나 신중하고 방어적긴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회는 이제 이 청춘들에게 적절한 국가장치를 마련하여 끊임없이 이들을 잉여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상위 몇 정도만 단단한 직장과 함께 안정된 삶을 보장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불안한 일상과 함께 아르바이트 수준의 비정규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회는 이들에게 이미 승자독식의 게임의 법칙을 적용하여 위로 치달아 올라올 것만을 종용한다.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냉혹한 국가장치 안에서 이들의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386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용기조차 없다. 소수자 혹은 경제적 약자인 이들은 `정글의 법칙’ 안에 길들여지고 길들여져 마음 아파할 여유도 없다.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매 순간 가장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의사 결정이 모인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열정의 힘 때문이다.”(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어떤 이의 말을 선뜻 동의하기 힘든 순간이다. 이른 아침 기댈 공간을 찾다 들어온 L군에게 커피 한잔 타주지 못했다. 그가 최소한 세상에 대한 건강한 오만이라도 부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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