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정산서당(鼎山書堂) 옛터를 찾아서
<대구논단>정산서당(鼎山書堂) 옛터를 찾아서
  • 승인 2011.09.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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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장

비슬산 기슭의 이애정(二愛亭)의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이애정의 성기덕(成耆悳) 선생은 `조선말 유학자인 심재(深齊)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선생으로부터 성리학을 공부하였다’는 기록을 본 적 있었다.

또한 광거당(廣居堂) 자료를 조사하던 중에도 `심재는 문박(文樸)의 서재인 광거당을 오가며,(중략) 43세 때인 1915년 문박 등과 한양, 개성, 평양, 중국 안시성 등지를 여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서너 해 전 정대리에 세워진 정산서당(鼎山書堂) 유허비(遺墟碑) 제막식이 떠올랐다. 그 때 스크랩해 둔 기사에 따르면 이종진 달성군수와 문희갑 전 대구시장, 조후승 유허비 건립회장, 창녕 조씨 문중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개최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정산서당은 심재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었다. 일전 그 터를 답사하였더니 둘레에 민가가 들어서 있고, 건물이 있던 곳은 밭으로 변해 있었다.

1873년 창녕 고암 원촌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퇴계 학통을 이어 받은 최근세 조선 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꼽히고 있는데, 이 서당에서 1914년부터 15년 동안 약 2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서당은 안타깝게도 6·25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말았다. 이에 최근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선생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유림과 문중이 힘을 모아 유허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었다.

비문에 따르면 우선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嚴親인 素履齊 曺炳義 公으로부터 薰陶와 家學을 익히고 二十歲를 前後하여 當世의 儒宗 ?宇 郭鐘錫, 晩求 李種杞 四未軒 張福樞와 西山 金興洛諸先生을 차례로 찾아 問學하면서 學問의 地平을 넓혔다.’는 비문이 이를 증명한다.

둘째로 애국 충정을 실천에 옮긴 지사였다. `先生은 十九世紀 후반부터 한 百年 混沌과 亡國의 歷史 속에서 때로는 憂國의 哀情을 드러내기도 하였고, 嶺南 儒林이 主動한 巴里長書事件을 비롯하여 日本 總督과 同胞 大衆에게 보내는 글을 起草하는 등 日帝에 抗拒하다가 拘禁되어 苦楚를 겪기도 했다.’라는 비문이 이를 증명한다.

선생은 정산서당에서 학문에 정진하던 중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항복한 임금의 복(服)을 입는다는 글이 없으니 내가 무엇에 근거해서 상복을 입겠는가?”라고 하면서 복 입기를 거부할 정도로 자신의 신조를 굽히지 않았다.

셋째 선생은 폭넓은 교우 관계를 통해 항상 보다 넓은 세상을 호흡하였다. 비문에는 `晦峯 河謙鎭과 偶齊 李觀厚, 無聞軒 李澈厚 裕齊 楊鐘樂 伊山 孔錫圭 등 南道의 많은 學者들과 交遊했고, 특히 亭垈에 들어와서는 嶝 하나 넘어 達城 仁興에 있는 萬卷의 典籍을 갖춘 廣居堂을 中心으로 主人인 壽峯 文永樸과 함께 百愧 禹夏九, 茶谷 李基魯, 近齊 鄭之純, 素巖 金鉉東 등 域內의 學者들과 자주 어울려 學問과 談論으로 友誼가 깊었고, 李大山의 決訟場補와 吳藥山, 朴晩醒의 文集 등 소중한 資料의 刊行에도 함께 參與했다.

뿐만 아니라 蘭谷 李建芳, 彛庭 卞鼎相을 비롯해서 嶺南을 찾아온 畿湖의 여러 碩學들과의 從遊와 ?江 金澤榮, 梅泉 黃玹 등 國內外의 이름난 文士들과의 直間接의 交流가 잦았으며 이 분들이 남긴 글에서도 先生의 學問의 깊이와 名望을 엿 볼 수가 있다.’고 나와 있다.

넷째,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영향이 지대하였다. 비문은 `金在華, 李元敎, 李秉灝, 成純永, 朴紀鉉, 河性在, 曺圭喆, 文普采를 비롯해서 心喪三年을 지킨 弟子가 百名에 이르렀고 모두 百八十名이 넘는 文人들이 記錄되고 있다. (중략) 先生은 鼎山 十五年後 玄風 雙溪에 龜溪書堂을 새로 열어 講所를 삼았고, 一九三三年 그 곳에서 別世하였다. 당시 東亞日報는 朝鮮이 낳은 碩學, 漢學界의 泰斗 深齊先生 長逝하는 哀悼의 記事를 남겼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선비가 우리 고장에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함께 걸었던 것이다.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받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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