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宋斗煥 義士像 앞에서
<대구논단>宋斗煥 義士像 앞에서
  • 승인 2011.10.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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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대구 앞산 낙동강승전기념관을 지나 중턱으로 올라가다 보면 심연 송두환 의사상(心蓮 宋斗煥 義士像)이 우리를 반겨준다. 카이젤 수염을 한 무인풍(武人風)의 당당한 모습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송두환(1892~1969) 의사는 대구 달성 출신으로 빈민회(貧民會), 경북 제2유림단 운동 등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로 나와 있다. 필자는 구체적으로 그의 출생지가 어디인지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10년 정운해 등과 신배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9년 9월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기금으로 거액의 재산을 헌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대구 시내에 일반 가옥을 구입하여 독립운동의 비밀 거점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비밀 거점을 통하여 군자금 조달과 각종 거사 계획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송두환 의사는 1920년, 빈민회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4월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같은 해 8월 29일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도 정동석(鄭東錫)에게 권총과 실탄의 보관을 위임하고 계속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가 1923년 3월 다시 체포되어 1924년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9년 8월에는 신간회 대구지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1930년 11월에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피선되어 전국적인 무대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대구의 이상화 시인도 신간회 출판간사를 맡아 활동한다.

이러한 그의 독립운동은 이미 학창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보성학교 재학 중에 벌써 홍진의, 김두봉, 주시경 등과 함께 일제의 경제 수탈 정책에 항거하여 산직장려계(産織裝勵契)를 조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헌병에 의해 해산 당한 뒤, 절치부심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졸업 후 고향인 대구에 내려와 중국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던 것이다.

이 공로로 1990년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정작 고향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연세든 분에게 몇 차례 송두환 의사에 대해 문의하였지만 아시는 분을 만나지 못하였다. 자료를 찾다보니 경북 감포 출신의 정래영, 김봉규 의사 등이 송두환 의사가 마련한 대구의 비밀 거점을 많이 이용하였다고 나와 있었다.

서울에서 휘문의숙을 다니던 정래영 의사는 3·1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약관의 피 끓는 나이로서 동지를 규합하여 적극 가담하였으나, 일경의 무력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대구ㆍ서울 등지의 동지들과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송두환ㆍ최해규ㆍ김종철ㆍ김봉규ㆍ정두희ㆍ노기용ㆍ정두규ㆍ정동석 등 여러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대구에 오면 송두환 의사가 마련한 비밀 거점에서 숙식을 하며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각종 거사 계획을 수립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국내 활동과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 단체들과도 교류하여 양동작전을 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송두환ㆍ김종철 등은 1920년 9월 만주의 서로군정서로부터 독립운동 관련 문서와 권총ㆍ탄약 등을 군정서 김응섭과 신의주에 상주하는 송상욱 등을 통해 대구로 반입하였다. 이 문서와 무기의 관리 책임은 송두환 의사가 맡았다. 그리고 필요시에 이를 몸에 지니고 일제 요인 제거에 쓰기로 하였다.

이에 그해 12월 8일 김종철ㆍ김봉규가 일경을 습격하여 갑비수를 사살하게 되자 일경의 수사망이 확대되어 왔다. 김종철은 즉시 만주로 망명하였으나 최윤동이 경북 군위에서 체포됨으로써 모든 활동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침내 송두환을 비롯한 정래영 등 많은 의사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구법원에서 이른바 불법무기소지ㆍ보안법 위반 등 죄목으로 2년형의 선고를 받아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이었다.

이로 보면 송두환 의사의 독립운동은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 용기와 열정이 길이 찬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그의 출생지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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