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도가니
<대구논단> 도가니
  • 승인 2011.10.1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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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소의 볼기에 붙은 고기를 도가니라고 한다. 음식점에서는 무릎도가니 탕으로 통한다. 몸보신에 좋다고 해서 비교적 나이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도가니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쇠붙이를 녹이는데 쓰이는 흑연으로 만든 그릇’을 일컫는다. 일반인에게 생소하게 들리던 도가니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영화 `도가니’가 히트를 치면서다. 도가니란 제목의 소설이 영화화 되면서 제명을 그대로 옮겨 붙인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반 노블레스 오브리쥬, 종교인의 가식, 사회지도층의 왜곡된 행태, 인간군상의 양면성 등이 하나의 카테고리에 담겨 있다. 영화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에 빗대어 묘사된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퓨전사회로 치닫고 있다. 단순성을 요구하면서도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융합성이 무시되지 않고 있다.

사회· 환경적 여건의 변화로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만 바람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우리는 조직생활을 피할 수 없다. 공동체적 조직은 상이한 가치를 유사한 가치로 통합해 가는 인간들의 집합체로서 그 나름의 변별적 틀을 만들고 독특한 문화형성을 수반하게 된다. 말하자면 나름대로의 새로운 가치를 하나의 범주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사회의 수많은 공· 사조직은 특유의 도가니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들의 생각과 가치가 도가니란 틀 속에서 융합하여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사회 환경을 만든다. 모든 집합체가 쇳물을 녹이는 도가니처럼 조직원의 상반된 이해를 용해하면서 공통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공익, 평준, 형평, 민주, 복지 등등의 가치를 내 걸고 그럴듯한 제스처를 쓰고 있지만 핵심은 자기본위의 이기로 덧 입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청각장애인시설 운영자는 사회적으로 우호적 평가를 받는 사회복지시설의 간판을 내 걸고 철옹성의 단단한 도가니를 만들어 이해관계자들과 주고받는 융합적인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반도덕적· 반사회적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범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도가니 속에서 이해당사자끼리 융합적인 상호 협력체계를 만듦으로서 불법을 합법으로 변환시키는 일에 아주 능숙했다.

영화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기독교인인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죄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미성년 아이들을 성추행하고 폭행하는 당사자들 모두가 크리스천이란 점에서 울분에 치를 떨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시민단체의 집단행동도 법 전문가 집단의 조작적 피고 구출 작전에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는 피고를 도우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존재지만 파렴치한 범죄자의 형량을 줄이거나 죄 없음으로 만드는 기술이 절묘하여 변호사라는 직업을 재평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도 출세욕에 짓눌려 제 구실을 피했고 전관예우라는 전통이 재판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읽을 수 있었다. 도가니는 종교인의 탈을 쓴 거짓 사회사업가, 감독관청, 경찰, 검사, 변호사, 판사 등이 한 무리가 되어 불법적· 부도덕적 도가니를 형성한 우리사회의 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논픽션에 가까운 영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용어가 얼른 머리를 스친다. 돈으로 있는 죄를 없게도 만드는 이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한 법의 잣대로 불법을 합법으로 부도덕을 도덕으로 재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인권, 정의의 탈을 쓴 독버섯 도가니들이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들춰낼 수 있을까.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우리는 역기능적 도가니들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노동· 복지·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암묵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때로는 목도하고 있다.

불법 도가니는 사회의 악이다. 국가· 사회를 형성하는 각 체제는 역할과 기능에 따라 제 나름의 도가니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와 질서를 만들어 간다. 사회에 유익을 주는 도가니 체제는 많을수록 좋다. 도가니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 되어서는 바른 사회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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