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타인보다 오래 살아남기”
<대구논단> “타인보다 오래 살아남기”
  • 승인 2011.12.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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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해야 할 일을 핑계로 이른 아침 학교에 들어서는 날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이 강의실 안팎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다. 가끔은 목례로 아니면 눈인사로 고마움을 대신하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일상의 삶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아 보인다.

“저는 시급 5100원을 받는 57살의 대학 구내식당 노동자입니다. 아침 8시부터 일합니다. 오후 4시까지 일하기로 했으나 어떤 날은 6시나 7시까지도 합니다. 저는 시간이 짧은 편에 속합니다. 다른 분들은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꼬박 12시간을 뜨거운 불과 무거운 식재료와 커다란 용기들을 옮기면서 일하고 계십니다. ... 이곳은 일하는 시간 내내 단 1분도 휴식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9월16일부터 출근을 했는데 점심시간에 조차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서 또 일을 했습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된 모 대학 식당 노동자의 사연이 가슴을 애틋하게 한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안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이자 누구의 어머니일 것이다. 이들은 한 조직에서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일을 하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조직 밖으로 내칠 수 있는 잉여의 존재들이다. 이 고립과 불안을 한 없이 견디어야 하는 조건이 한 개인 노동자만의 몫은 아닌 듯하다.

핍진한 삶에 대한 연민은 이 사연을 전한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에서 느껴진다. “저는 투쟁도 싫고 싸움도 싫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왜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당하게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 또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타인을 향한 열린 공감의 소통은 삶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경험하고 있는 이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경쟁에서 밀려나 쓸모없는 `잉여물’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위기는 일상 안에 존재한다. 그야말로 `타인보다 오래 살아남기’라는 절박한 명제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생존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가, 어떤 조직이, 누구를 금 밖으로 밀어내는가를 둘러싼 불안과 위기의식은 `쓰레기’로 소각되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필사적인 무한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집단으로부터 혹은 권력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잉여의 존재로 명명 받는 순간 따뜻하고 안정적인 소통의 관계에 대한 욕구는 강렬해지지만, 이를 채워 줄 친밀성의 집단과 개인의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지난 시대에 개인을 묶어주던 집단적인 유대가 느슨해지면서 소통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이들은 `임시 노동자’라는 배제의 직함으로 현실에서 완전히 유리된 타자로 남는다. 익명적으로 결집된 듯 보이는 공동체 속에도 성차와 계급, 빈부의 격차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재화한 개인들의 아픔을 보듬을 공간은 이 사회 안에서 부재해 보인다.

“밥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 이란다/ 네가 밥을 함께 나눌 친구를 갖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지금 밥그릇이 비어 있단다/ 네가 함께 웃을 친구를 갖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지금 울고 있는 거란다/ 이 밥그릇 속에 이 밥 한 그릇 속에/ 이 세상 모든 슬픔의 비밀이 들어 있단다”(고정희 `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게 아니란다’)라며 참혹하게 없는 자들을 칼질하는 이 세상을 힐책하는 시인의 절규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문제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잉여의 노동자로서의 삶이 대학 안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른 새벽부터 우리들이 강의실에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을 치우고, 대학 건물의 그늘진 쪽방 같은 곳에서 식은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이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교과부에서 숫자놀이로 대학을 무한경쟁 시스템으로 밀어 넣는 동안, 대학은 그 숫자에 도달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고 이런 가운데 이들의 소외와 불안은 그저 이들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 대학에는 수많은 석학이 있고 훌륭한 교수님이 계시며 더 훌륭한 총장님이 계십니다. 미래의 어머니들이 배출되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곳의 학생들의 밥에 수많은 눈물과 원성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이 밥과 함께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대학의 몫입니다”라는 한 대학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 아주머니의 절규가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약한 자들에 연민이 시대 현실 앞에서 과장되고 사치스러워 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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