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하빈 육신사를 참배하고(2)
<대구논단>하빈 육신사를 참배하고(2)
  • 승인 2011.12.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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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육신사에서 느끼는 세 번째 생각은 역사의 질곡을 이겨 나온 사람들의 지혜와 의지이다. 1417년 태어난 취금헌 박팽년 선생은 평소 올곧은 선비 정신으로 학문에 정진하며 민복을 위해 일하다가, 조선 세조 원년(서기 1456년) 사육신들과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한집안이 모두 없어지는 화를 입게 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훈을 몸에 익히며 성장한 취금헌 선생은 열심히 책을 읽어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로 발탁된 선생은 성삼문 등 여러 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여 세종 임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충청도 관찰사에 이어 형조참판으로 있던 중 단종 복위 운동을 일으켰다가 마흔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지만 선생이 남긴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선생은 거사 실패로 자신은 물론 당시 이조판서로 있었던 아버지 박중림, 그리고 인년, 기년, 대년, 연년 등 4형제, 또한 아들 헌, 순, 분 등 3대에 걸쳐 모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한 집안이 몽땅 죽임을 당하는 멸문지화를 입은 것이었다. 그리고 부녀자들은 관청의 노비로 끌려갔다.

사육신 중 다른 다섯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모, 자신, 아들 등 3대가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인지 박팽년의 후손만은 대를 이어 하빈면 묘리에 새로이 터를 잡고 살아났으니 그 사연이 참으로 기이하다.

취금헌 선생의 둘째 아들인 박순의 아내 성주 이씨는 대구에 사는 교동현감(喬桐縣監) 이철근(李鐵根)의 딸이었다. 그래서 친정인 대구의 관비로 보내졌는데 뱃속에 유복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관아에서는 성주 이씨를 유심히 감시하고 있었다. 서울로부터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관비로 몰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산하니 아들이었다. 이 때 정말 우연히도 같은 날 부인의 여종 하나가 딸을 낳았다. 취금헌 선생의 며느리 이씨 부인은 아들을 살려 대를 잇기 위해 얼른 종과 아이를 바꾸었다. 이렇게 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진 취금헌의 손자는 일부러 이름을 박비(朴婢)라고 지었는데, 그것은 박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이었다, 박비는 지난 일들을 모른 채 노비의 신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나 박비는 명문가의 손자답게 비범한 재주에 출중한 용모를 갖추어 갔다. 누가 보아도 하찮은 신분이 아님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행동하였다. 그 때 마침, 아버지 순과 동서간인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사로 와 있었다. 이극균은 박비가 취금헌의 손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숨어서만 살겠느냐? 자수하여 떳떳하게 살도록 하자.” 이리하여 박비는 자수를 하기 위해 이극균과 함께 서울로 갔다. 이 때, 서울에서는 임금이 성종으로 바뀌었는데, 당시 조정에서도 사육신들의 충성심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성종 임금은 찾아온 박비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충신의 자손이라 칭찬하면서 그 동안의 고생을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사육신 중 오직 하나 남은 핏줄이라 하여 박비의 이름을 박일산(朴壹珊)이라 고치고, 우선 궁중의 가마와 마필, 그리고 목장을 책임지는 `사복시정(司僕侍正)’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이것은 성종 임금이 그 동안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박일산은 성종 10년(서기 1479년)에 외가가 있던 지금의 하빈 묘골에 터전을 잡아 묘골 박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웅장한 종가 건물을 짓고 마을을 가꾸어나갔다. 지금도 이 묘골에는 보물로 지정된 육신사의 태고정을 비롯하여 삼충각, 도곡재, 충효당, 금서헌, 삼가헌, 하엽정 등 의미 깊은 옛집과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태고정 옆에 있는 은행나무는 그 동안 이곳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둘레의 옛 건물은 물론 나무 한 그루라도 잘 보호하고 길이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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