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인생의 발자국
<대구논단> 인생의 발자국
  • 승인 2011.12.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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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학 교수

또 한 해가 기울고 있다. 올 한 해, 내 삶의 몫으로 주어진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한 번 되돌아봐야할 때가 온 것이다. 즐거웠던 일과 언짢았던 일들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우주공간에서 보면 모두가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일들이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에는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일 아쉬운 한 해였다면 내년에는 더 노력해서 더욱 알찬 계획으로 보람된 한 해를 계획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시간이라는 것은 연속된 것이기에 지난해와 올해가 달력 바뀌듯 완전히 다르지 않다. 인생을 하나의 선으로 볼 때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것이 선이기에 선상의 어떤 구간이나 범위 자체는 어쩌면 그리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기에 선으로 보이는 무수히 많고 작은 촘촘한 점들, 하루하루 내딛는 발걸음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세월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이기에 인생의 범위나 구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점이라 할 수 있는 오늘 하루,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런 인생의 소중한 점들을 어리석게도 매순간 채찍질 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듯하다.

천년을 산다고 해도 육체의 삶이 결코 길지 않은 것을. 광활한 사막의 한 톨 모래알보다 작은, 무한한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서 찰나(刹那)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인 것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되고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황혼이 깃들고 하루는 또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잠이 든다.

살면서 우리가 사랑할 시간도, 일할 시간도, 그리고 고통 받고 슬퍼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그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면 원고 마감시간에 쫓기는 저널리스트처럼 그렇게 내 인생을 바쁘게 채찍질했을까?

올해 지구촌을 돌아보면 유난히도 많은 자연재해가 휘몰아쳤다. 2011년은 재난의 역사를 다시 쓴 해로 기네스북에 올라야할 정도라는데 세계적인 손해보험기업 Munich R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발생한 자연재해 피해액만 2650억 달러 규모로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사상 최대 재산피해액을 기록했던 2005년의 2200억 달러(인플레이션율 적용)를 훨씬 웃도는 수치란다.

피해규모로 보면 지난 3월 일본열도를 강타했던 지진해일이 피해액 2100억 달러, 사상자 15,500명, 실종자 7,300여 명으로 단연 선두였고 2위는 약 200억 달러의 피해액을 기록한 뉴질랜드 지진이었으며, 3위는 미국 남동부를 폐허로 만든 토네이도(피해액 75억 달러), 4위는 호주의 홍수피해(피해액 약 73억 달러) 순으로 집계되었다.

지난여름 우리나라에도 집중호우가 내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태풍, 지구온난화, 집중호우 등 순간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쳐 요즘 시장에 나가보면 야채 값이 크게 폭등했다. 지나친 비로 인해 야채의 성장이 더뎌지고, 병충해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우리 인간의 삶, 더 나아가 동식물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을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결국 이러한 기후변화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담보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정치적으로는 올해도 어김없이 진보와 보수 간 치열한 이념논쟁이 있었고,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심한 지역갈등을 보였으며, 흑백논리와 편가르기, 이분법적 사고와 가치관이 만연해 있고, 거기에다 빈부·세대·지역·도농 간의 격차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양극화되어 우리 사회가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어 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세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공산혁명이 일어났고, 공산주의의 모순 때문에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졌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기보다는 중산층이 다이아몬드형으로 두꺼워 질 때 그 사회가 가장 안정되는 것처럼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중용(中庸)’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이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눈이 내린 후엔 발자국이 남고 인생의 눈길에도 발자국이 남는다. 어느 곳을 어떻게 걸어왔는지가 그대로 드러나 때론 부끄러운 흔적도 되고 아름다운 흔적도 된다. 눈길을 걸을 때 항상 조심스러운 이유는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르는 다른 사람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묘년 한 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고, 한 해의 사라짐은 또 다른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늘 그러하듯 며칠 뒤 맞게 될 새 해에는 소비적 논쟁과 지역 및 이념 갈등 등 소모적인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희망과 활짝 핀 웃음으로 첫발을 내딛길 기대해 본다.

“과거를 되새기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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