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삼류들의 삶”
<대구논단> “삼류들의 삶”
  • 승인 2011.12.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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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건(대구대 영어교육과 교수)

방학을 하고 나니 학교 안의 사람들 모습이 뜸하다. 생선가시 마냥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 잔광이 고적한 연구실 안을 황금빛으로 장식한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텅 빈 교정을 바라보다 문득 얼마 전 학회일로 방문했던 서울의 모 대학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23년 전 나는 그 대학 근처의 시장 안, 반 지하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겨울이 되면 늘 그렇듯이 연탄 꺼지는 일로 전전긍긍해야 했으며,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에 시달여야만 했다. 물질적으로는 `삼류의 삶’의 시작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서 상경한 내 또래의 학생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열악한 생활 조건을 견디어야만 했다. 최근에는 대학생 수가 너무 많아져 대학생이라 해봐야 별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살지는 못하지만, 당시에는 대학생이라는 위치가 꽤나 호사스러운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그 가난했던 생활을 젊음과 까닭 없는 자만심으로 우쭐대며 보장된 미래를 얻은 것처럼 자위를 했던 삼류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취업률’의 잣대를 대어 전공과는 관계없는 이른바 대학을`직업전문학교’로 양성하라고 암묵적인 종용을 하고 있지만, 당시의 대학은 75년 민주화운동, 80년 5.18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시민항쟁, 88년 노동자대투쟁, 90년 기무사보안 사찰, 91년 분신 정국 같은 국가의 침울했던 시절과 분위기를 같이 했다. 학생들은 국가 분위기와는 아랑곳 하지 않았던 `일류들의 삶’을 경멸하며 국가와 대학의 개혁을 위해 삼류들의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무모하리만치 자신을 버리고 `혁명’을 꿈꾸던 삼류 시절이었다.

이제 중년이 되어 대학 안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딱히 뭐라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람을 등급으로 매기는 잔인한 이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만을 바라지만, `일류 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하나 달랑 받고 세상에 뻗대며 살아가라고 강요하기에는 80년대의 대학 논리는 엇나가 보인다. 최근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과의 한 학생이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졸업의 심경을 담은 이야기가 가슴을 애틋하게 한다.
“지난 육년간의 대학생활이 마무리 되어간다. 되돌아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굉장히 괴로웠고 굉장히 기뻤고 굉장히 행복했다. 24살의 늦깎이로 대학을 입학한 나는 이제 십여 일 후면 서른이 된다. 입학 초기의 나는 서른이 되면 아무걱정도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 젊은 시절의 걱정거리를 보장된 미래로 위로 하곤 했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나니 더 큰 무게감만 어깨에 걸려있다.

하지만 또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시절을 돌아보면 이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듯 웃으며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와 함께 있어준 모든 분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었던 모든 분들도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더 큰 가슴으로 이성과 감성으로 사람들을 따사롭게 바라보는 괜찮은 놈이 되자.” 내가 기억하는 이 학생은 지금의 대학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친구였다. 꽤나 진지했고, 동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며, 지나치리. 만큼 낭만적인 아이였다.

어쩌다 마주하는 술자리에서는 마치 80년대의 대학생처럼 과거로 되돌아간 듯 한 분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시대를 역행했던 탓일까. 졸업을 앞 둔 이 친구의 짧은 이야기가 나를 먹먹하게 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일류사회’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이 아이처럼, 별반 직업을 얻지 못한 아이들을 `삼류’로 낙인찍어 영원히 사회 밖으로 격리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버리고 사회의 규칙 안으로 들어와서 당당히 일류가 되라고 압박하는 공간에서 삼류의 인생은 찬란해 보이지 않는다.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 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 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날이 올 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을 크게 마셨다 내 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이재무 <삼류들>) 어느 시 구절처럼 이 시간이 가고 어느 세상이 오면 일류들의 삶 안에서 빛나는 자신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삼류들의 삶을 속절없이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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