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한글학자 이윤재 선생 묘소를 찾아서(2)
<대구논단>한글학자 이윤재 선생 묘소를 찾아서(2)
  • 승인 2011.12.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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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다사 이천리에서 하빈 현내리로 넘어가는 마현령 산록에 자리한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 묘소를 참배하면서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궁금한 점은 1943년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한 선생이 어떠한 연유로 그 무덤은 우리 대구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선생이 대구와 인연이 깊었던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옥사한 후 선생의 무덤은 서울 광나루에 마련되어 있었으나, 그 뒤 남은 가족들이 모두 대구로 내려옴에 따라 1973년 3월 달성군 다사면 이천리 속칭 돌산 중턱으로 이장했다는 기록이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생의 제자들과 지인들의 노력도 있었다고 보아 길이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 생각할 점은 선생의 의지와 인품에 대한 것이다. 선생은 호를 `한뫼’, `한메’, `환산(桓山)’ 등으로 썼다. `환산’은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의 후예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기 위해 지은 것이며, `한메’와 `한뫼’는 한족(韓族)의 후예로서 산처럼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뫼’와 `메’는 산을 나타내는 순 우리말이 아닌가.

선생과 함께 조선어학회 회원이었고 같이 옥고를 치른 한글학자 이희승은 이윤재 선생의 인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는 능소능대(能小能大) 즉, 여러 가지 재주 피우는 것을 몰랐고, 욕심을 몰랐고, 세상을 몰랐다. 환산(桓山)이란 호가 한민족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자아(自我)를 잘 알았으며, 의리(義理)와 정기(正氣)를 잘 알았다.”

이로 보면 선생은 전형적인 학자이자 지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위업을 수행하였다. 세 번 째 떠오르는 생각은, 선생의 힘든 삶을 궤적을 통해 질곡의 우리 역사 한 단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선생이 남긴 희생정신과 올곧은 선비정신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점이다.

선생은 1919년 영변의 숭덕학교에서 3.1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3년간 평양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조선어학회를 조직하였고, 맞춤법통일안을 완성하였다. 1934년 진단학회를 창립하여 역사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최현배 이희승 등 33인이 검거되었다. 그 후 너무나 기혹한 고문으로 1943년 함흥형무소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선생의 삶은 역사의 질곡에 맞서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체성을 온전히 간직하고자 했던 선각자적인 삶이었다. 개인의 영달은 한 번도 꿈꾸어 본 일이 없고,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 연구하고 정도(正道)를 위해서만 자신의 몸을 희생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묘소가 우리 고장에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로서 이를 교육적으로 널리 활용해야 한다.

몇 해 전 러시아를 여행했을 때에, 레닌그라드로 널리 알려진 뻬제르부르크에 갔을 때, 그곳 성당 뒷마당에 갔더니 그 고장 출신의 유명 인사들의 묘소가 모두 모여 있었다. 무덤은 부채꼴 모양으로 구획 지어진 곳에 돌아가신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첫 번 째 과학자 묘역에서 조건반사설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의 묘비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심리’ 첫 시간에 만난 행동주의 과학자가 바로 이반 파블로프였다.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의 관계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이른 바 S-R 이론의 창시자를 묘비로나마 대했을 때의 경이로움과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차이크프스키, 톨스토이 등 유수한 예술가들의 묘비가 줄지어 서있었다. 필자는 그 묘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목숨을 바친 한메 선생을 묘소로나마 가까이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 둘레에 위인들의 무덤을 많이 모시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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