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흙으로 빚은 문화재 도기불상
<대구논단>흙으로 빚은 문화재 도기불상
  • 승인 2012.01.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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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大記者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들마다 각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느 때부터 색깔이 다른 인류가 발생했는지 유추할 길은 없지만 아무튼 이 세상에는 대충 다섯 가지 유색인종이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크게 나누면 황색인과 백인 그리고 흑인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황색인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많이 거주하고 백인은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흑색인종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황색인종과 백색인종은 문화적으로 일찍 발전을 거듭해왔다. 오랜 과정을 거치며 백인들은 일취월장했고 황색인은 주춤했다. 게다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흑색 인종권은 원시상태를 면치 못하고 아직도 가장 취약한 문화적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들 인종들은 각 민족별로 독특한 자기 나름의 문화를 융성시켰다.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멕시코나 브라질 등에 산재한 수많은 유적 등 현대의 과학으로서도 가늠하기 어려운 문화유적을 남긴 인류는 역시 위대하다. 중국에서 발견된 유적과 문화재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로장생을 염원했던 진시황이 남긴 병마용(兵馬埇)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로 보나 토용의 조각으로 보나 한 시대의 명품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물품 중에는 과학이 발달한 지금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불가사의한 것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인류는 원래 흙이나 돌을 사용해오다가 나중에 쇠를 쓰게 되는 문명의 발달을 이뤄온다. 돌은 다듬고 깎아내는 기술이 필요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철기의 사용이 불가피해진다.

흙을 사용하는 것도 자체의 힘만으로는 접착이 안 되기 때문에 찰흙 등 다른 흙을 섞어 물과 비벼 형태를 만든다. 예전에 나온 그릇 중에 순전히 흙만으로 빚은 토기(土器)가 다수 발굴되는 것도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질그릇이나 오지그릇 등 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이 이에 속하지만 여기에 모래를 섞고 유약을 바르면 사기그릇이 된다.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그릇은 문화적 가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 넣고 1000도 이상의 고열로 구워내면 훌륭한 예술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청자의 시대다. 오묘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어 후인들을 놀라게 한다. 특히 청자의 색깔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비술(秘術)로 통한다. 흙의 종류와 유약의 비밀은 후계자를 두지 않는 철저한 비밀주의에 의해서 지금까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범접하지 못하는 청자의 비밀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겠지만 숨어있는 청자의 발굴도 대단히 시급한 일이다.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비싸게 거래되는 청자의 값어치는 많은 청자의 공개보다 오히려 안방에 꼭꼭 숨어들게 만들었다.

고려시대의 문화재적 가치가 큰 작품들은 특히 불상에서 두드러진다. 고려는 숭불사상의 극치를 기록했던 시대다. 그 반발로 고려를 뒤엎은 조선시대는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으로 불교를 억눌렀다. 대대적으로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에 나온 수많은 불상이 그 대표를 이룬다. 절에 안치된 불상은 참으로 가짓수가 많다. 입불과 좌불로 크게 나뉘지만 와불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와불(臥佛)은 많지 않지만 전남 화순에 엄청나게 큰 와불을 모시고 있는 절이 하나 있다. 이 절에는 불상만 천불(千佛)이라고 할 정도로 누워계신 부처님이 많다.

불상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보로 구분한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는 흔한 일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느냐 하는 전문가의 감정이 문제다. 이 세상에는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눈 감으면 코라도 베어갈 사기꾼들이 많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온갖 예술품들에 대한 짝퉁 시비가 그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럴 즈음 새로 발견된 문화재로서의 도기(陶器)불상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불상 중에서도 반가사유상은 대개 금동과 돌로 제작되었는데 도기 반가사유상은 고구려 말기나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문화재 전문학자인 정명호교수가 확신으로 증언한다. 하나의 우리 문화재가 새로 발견된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더구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흙으로 빚어 만든 도기 반가사유상은 그 의미가 크다. 반가사유상은 왼쪽 다리를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얹은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오른 팔꿈치는 무릎 위에 붙인 채 약간 몸을 숙이고 오른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있는 생각하는 보살상이다. 이를 가리켜 한국과 일본에서는 미륵보살반가상이라고 불러왔다.

도기 반가사유상의 출현으로 금동, 돌, 나무 등으로만 제작해온 것으로 알려졌던 재질(材質)문제가 흙으로까지 확대된 것도 크나큰 수확이다. 더구나 작품의 모양과 전체적으로 풍기는 부드러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는 곳곳에 숨어있다. 약탈문화재도 프랑스와 일본에서 되돌아오고 있 현재의 시점은 우리로 하여금 감춰져 있는 수많은 문화재의 발견에 대한 열망을 더욱 크게 높이고 있다. 임진왜란 420년이 되는 금년에는 더 많은 약탈문화재를 찾아오고 깊숙하게 숨어있는 문화재를 발굴하는 해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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