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출판기념회
<대구논단> 출판기념회
  • 승인 2012.01.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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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난주 친분이 별로 없던 정치인 두 사람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출판기념회에 꼭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한 곳으로부터 3번 이상 문자가 온 것으로 기억된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던 터라 그냥 넘기고 말았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책값이 든 봉부를 손에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 모습을 가상해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누구나 출판기념회를 열수는 있다. 다만 그 성격이 문제다. 보통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뭔가 무게가 있고 책을 쓴 당사자의 인격을 떠오르게 한다. 국민들의 추앙을 받던 유명인사가 삶의 철학과 경험, 비화를 담은 책을 출판하면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노학자가 후학과 제자들이 마련해 준 조촐한 출판기념회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은 연민과 함께 훈훈한 마음을 갖게 한다. 또 문인들이 아껴온 글들을 모아 출간한 첫 출판회에서 대표작품을 골라 낭독할 때는 잠자고 있던 우리의 감성을 흔들어 준다. 직접 쓴 글을 모아 책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지만 그 작업은 쉽지가 않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분량 채우기도 간단치 않다.

책을 낸 후 어떤 평가가 나올지 지레 걱정이 앞선다. 책을 내기 쉽지 않은 이유들이다. 책 속에는 글쓴이의 철학과 인격이 담겨있다. 우리는 누가 책을 냈다고 하면 일단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렇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책은 그냥 종이 묶음일 뿐이다.

4월 총선을 겨냥해서 많은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을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자유의사다. 다만 그런 현상이 사회적으로 역기능적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면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인 가운데는 평소 스스로 쓴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출판기념회를 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필 책으로 출판회를 거창하게 벌인 정치인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책을 단 보름 안에 만들어 주는 전문업체가 있다는 말도 있다.

책 제목만 거창하게 붙이고 책의 내용보다 볼륨만 맞춰주면 되니까 책 만드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당사자와 인터뷰 몇 번 하고 방향 설정만 하면 기획사가 다 알아서 해 준다. 300여 페이지 책 만드는데 글 잘 쓰는 아르바이트생 몇 명만 고용, 워드 작업하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 일주일 만에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봇물처럼 출간 러시를 이룬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 역기능적 현상을 보여준다. 첫째, 돈을 주고 남에게 대신 글을 쓰게 하고 자기가 쓴 양 책을 내는 것은 책에 대한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책 내는데 존엄성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할지 모르나 책은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인들이 후원금을 거두기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모을 수 있는 법정후원금의 연간 한도액은 1억5000만원이지만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늘어난다. 호텔 등 대형 공간에서 열리는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참석자는 지역주민, 친지, 기업, 공공기관 등 유관기관들이다. 국회상임위 끗발에 따라 후원 성 참석자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지난 6개월간 현역 의원의 90%이상이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여의도와 지역구에서 두 번 이상 출판기념회를 연 의원도 상당수라고 한다. 1200여명의 예비후보 등록자까지 합치면 총선을 겨냥한 출판기념회는 총 1000건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출판기념회에서 공짜로 책을 주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되므로 누구나 책을 사야한다. 그런데 책값은 정해 놓은 것이 없다.

대기업에서는 임원 3-4명이 출판기념회에 가서 200-300만원까지 낸다고도 하고 수천부의 책을 사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04년 기업의 후원금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이 제정된 후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하여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게 합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 바로 출판기념회인 것이다.

출판기념회가 국회의원들의 `음성적 후원금’을 모으는 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인들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책 출간이 도리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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