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서사원 선생의 이강서원을 찾아서
<대구논단>서사원 선생의 이강서원을 찾아서
  • 승인 2012.01.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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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광역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다사 이천리를 지나 하빈면으로 넘어가는 길 오른쪽 골짜기 입구에 `이강서원(伊江書院)’을 알리는 아담한 표지석이 서있다. 이 골짜기가 바로 선사암 구지골인데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에 이강서원 완락당(玩樂堂)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강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을 지낸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 선생을 모시기 위해, 조선 1639년(인조 17년)에 세운 것이다. 달성서씨(達城徐氏)인 낙재 선생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당시 유명한 선비였던 장현광(張顯光), 정경세(鄭經世) 등과 사귄 학자이다.

이강서원의 `이(伊)’는 `저기(被)’ 또는 발어사(發語辭)로서 `자연스럽게, 순리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금호강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강서원은 금호강 가에 있는 서원이라는 뜻이 강하다. 이는 물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옛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들어있기도 하다.

이 이강서원 터는 원래 신라시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던 터라고 알려져 있다. 고운 선생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당시 새로운 학문인 유학을 가르쳤는데 이곳의 산수(山水)가 빼어나서 잠시 자리를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니 이곳은 예로부터 문운(文運)이 자리 잡은 뜻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서원은 새로 보수가 되어있었는데 주추와 계단에 놓인 돌은 처음 세워질 때의 것으로 보여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에서 먼저 선생의 나라와 학문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은 1583년(선조 17년) 여러 벼슬을 거쳐 정5품의 호조정랑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에는 청안현감으로 있으면서 전투에 참여하였고, 그러는 와중에도 문풍진작(文風振作)이 국가의 초석을 튼튼히 하는 길이라 여겨 구봉서원을 세웠다. 이 서원을 통해 청년들에게 학문을 익히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충의 정신을 돈독하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선생은 문장이 훌륭하여 1586년(선조 19년)식년과에 시관(試官) 이산해(李山海)가 선생의 글을 극찬하였다. 그 뒤, 계동(溪東) 정경창(鄭慶昌)은 `주자서절요(侏子書節要)’를 선생에게 주면서 `그대는 참으로 이 책을 배울 적임자’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둘째, 이곳에서 선생의 극기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채몽현(蔡夢硯)이 찬(撰)한 선생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임란 중에 부친상을 당해 이천(伊川)으로 돌아오니 마을이 모두 불타고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빈손이었다. 이 참상을 보고 대구부백(大邱府伯) 이상(李祥)이 움막을 지어주어 겨우 이슬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종일 식구들이 먹을 양식은 한 되도 되지 못했다. 이에 이상(李祥)이 선생에게 물었다.
“공은 시장함이 없는가?” “아무리 구차해도 글의 맛을 느끼니 가히 시장한 생각은 없습니다.”

셋째, 선생의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1598년(선조 31년) 오산성을 쌓는데, 당시 청안현감으로 있던 선생은 식량이 모자라자 친히 돌을 나르며 추후 식량을 구하는 대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것을 서약하였다. 그러자 공사장을 벗어나는 백성이 줄어들었고, 곡식 200여 섬이 모여져 성을 쌓는 백성들에게 음식을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넷째, 선생의 섬김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스승인 정구(鄭毬)선생이 노곡(蘆谷)에서 사빈(泗濱)으로 옮겨 왔을 때, 스승의 집이 미처 마련되지 않았음을 보고, 종일 방에 들어가지 않고 집짓는 일을 감독하였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아직 들에 거처하시는데 우리들이 어찌 편히 물러나 앉아 있겠습니까?”

선생은 평소에도 스승을 친부모 섬기듯 했다고 한다. 이처럼 훌륭한 낙재 선생의 흔적을 우리 고장에서 만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고장에 이와 같은 정신이 활짝 피어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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