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우리 둘레에는 야시 영감도 있었다
<대구논단>우리 둘레에는 야시 영감도 있었다
  • 승인 2012.02.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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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시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옛날 달성군 옥포면 어느 마을에 야시 영감으로 불리는 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야시’라고 하면 `여우’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듯이, 이 말은 아주 기발한 꾀를 내곤 하거나 교묘한 술수로 사람을 잘 속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여 왔다. 이 야시 영감은 한때 이 고장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으나 젊었을 때 술을 많이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다가 그만 살림을 몽땅 날려 버렸다고 한다. 그 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웃기며 밥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웃 마을 사람과 싸움이 붙어서 지게 되자 고춧가루를 뿌려 앙갚음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영감은 엉뚱한 구석이 많아서 하루는 동네 꼬마들을 모아 놓고 `메 산(山)’자를 가장 빨리 쓰는 방법을 수수께끼로 내놓았다. “누가 `메 산(山)’자를 가장 빨리 쓰는지 한번 보자. 하하하!” 그러자 아이들이 작대기로 땅에다 글자를 쓴다고 낑낑 거렸다.

“하하하, 그렇게 힘들일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야시 영감은 손가락 세 개를 뻗어 모래 위에 죽 내리긋고는 아랫부분을 가로로 죽 그었다. 그러자 바로 `메 산(山)’자가 되었다. “하하하!” 아이들은 모두 재미있다며 웃었다. 남에게 고춧가루만 뿌리지 않았다면 이런 영감도 마을에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느 겨울날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웃기며 돌아다니던 야시영감은 충청도 어느 지방의 주막에서 묵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따뜻한 아랫목은 이미 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자기는 문가에 앉게 되었다. 문가는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아주 추웠다. 추위에 덜덜 떨던 야시영감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여보시오. 밤은 길고 심심하니 우리 내기 합시다.” “무슨 내기요?” “여러분 중에 나보다 긴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술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랫목에서 자기로 합시다.”

“좋소.” 이래서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들 하품을 하며 이야기를 하였지만 곧 끝나버렸다. 일부러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야시영감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한 머슴이 나무를 하러 갔는데, 점심때가 되어 밥통 뚜껑을 열다가 그만 숟가락이 바위틈에 들어가 버렸어. 숟가락을 빼내려고 자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드니, 숟가락은 빠지지 않고 소리만 자꾸 나는 거야. 덜거덕, 덜거덕, 덜거덕…….”

그 때부터 야시 영감이 덜거덕 소리만 계속하였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요?” “글쎄, 숟가락이 빠질 때까지 해야 하는데 언제 빠질지 알 수가 없소.” “아이고, 하품이야.” “안되오. 하품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야 하오. 내기를 했지 않소? 덜거덕, 덜거덕, 덜거덕…….”

“아이고, 알았소. 항복하겠소.” 결국 사람들은 지친 나머지 항복하고, 야시영감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양보했다고 한다. 이 야시 영감이 좀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겼더라면 우리 고장이 `봉이 김선달’ 못지않은 위인(爲人)의 고향이요, 이야기의 고장이 되었을 것이다.

옥포면이라고 하면 조선 성종 때에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신 이철견 장군이 잠들어 있는 곳이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숨을 끊은 열부 진주 강씨가 살았던 곳이며, 병든 어머니를 위해 멧돼지를 잡기 위해 온 산을 헤맨 효자 김렴권이 살았던 곳이다. 또한 공정한 관리 김윤황이 선덕을 베푼 고장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야시 영감도 함께 살았다. 이 모두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다. 우리가 둘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결국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바르게 익히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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