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극단, 놈놈놈..그리고 여-인간 본성이 희번덕
대구시립극단, 놈놈놈..그리고 여-인간 본성이 희번덕
  • 황인옥
  • 승인 2012.06.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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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권에 당첨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황홀한 일이다. 대충 시나리오는 나온다. 복권 당첨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이 일순간 지나가나 싶다가 그것도 잠시, 천국의 문을 연 것 같은 환희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행복감은 아쉽게도 거기까지가 아닐까.

이후의 스토리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일 것이다.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복권에 당첨된 걸 어떻게 숨길까.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야겠지. 이민을 가는 것이 안전할까. 수많은 불안이 엄습해 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복권 당첨자가 내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친구나 형제일 경우는 어떨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말대로 배가 아프기 시작할까. 친구나 형제의 행운을 기꺼이 축하해 줄 수도 있겠다. 그 다음은?

일반적인 시나리오는 나한테도 행운의 부스러기가 조금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 정도는 할 것이고, 촌수가 가까울수록 그 기대치는 높아질 것이다. 인간의 사악한 본성으로 미루어볼 때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싸움이 일어 수도 있고, 더 극단적인 경우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대구시립극단이 ‘오뉴월단원熱전’의 마지막 시리즈 작품으로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공연한 ‘놈놈놈..그리고 女’도 복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술집에서 포커판을 벌이며 찌질하게 살아가는 규남, 성륜, 철웅 세 친구와 마담이 극을 이끈다. 담배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어리숙하고 마음 착한 철웅이 18억짜리 복권에 당첨되고, 이를 마담과 친구들이 알게되면서, 복권을 서로 빼앗기 위해 펼치는 인간의 욕망을 가볍게 그리고 있다.

극은 복권당첨 후 일어날 법한 반전 없는 상식선의 스토리로 전개됐다. 각각의 인물들은 정형화된 성격을 보여줘 새로울 것은 없었다. 반면에 스토리의 익숙함을 배우들의 탄탄한 호흡과 연기가 소극장 공연의 묘미를 살리며 관객들을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위안을 삼았다면 아직은 우리사회가 극단(極端)적인 욕망사회에는 이르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다. 두 친구와 마담은 어리숙한 철웅의 복권을 서로 강탈하려고 음모에 음모를 더했고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친구인 철웅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 사람이 배분하고 남는 몫 5천만원은 철웅이에게 남겨주려 했다. 일말의 눈물겨운(?) 우정과 양심은 밑바닦에 깔아 놓은 것이다.

예술이 그 시대상의 반영이라면, 이 연극이 비록 우리시대의 욕망과 사악한 본성을 다루고 있지만, 최악의 극한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말의 희망은 남겨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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