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줄탁은 동시(同時)에 하라
<대구논단> 줄탁은 동시(同時)에 하라
  • 승인 2012.07.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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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중리초등학교장

며칠 전 우리학교의 닭 사육장 둥우리에서 암탉이 품던 알에서 병아리가 세 마리 깨어났다. 깨어나는 순간을 관찰하기 위하여 멀리서 바라다보았다. 분명히 어미 닭이 부리로 알을 굴려서 쪼는 모습이 보였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갓 깨어나 물이 묻은 병아리가 어미 닭 날개 깃 밑으로 들락날락 하였다.

21일 동안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부리로 알껍데기 안쪽을 쪼고 있으면 어미 닭이 이 소리를 듣고 바깥에서 알을 깨는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이 때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바깥에서 부리로 굴리거나 쪼아서 도와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단다.
그래서 생긴 말이 줄탁(줄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 원만하게 병아리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동시(同時)나 동기(同機)는 반드시 `함께(同)’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시(時)나 기(機)는 `때와 시기’를 말한다.

줄탁동시(줄啄同時)에서 알껍데기를 쪼아 깨려는 병아리를 학생들이라고 생각해 보자. 어미닭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사인 것이다.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가르침을 주고 배우는 관계지만, 교사가 성공의 대상은 아니다. 분명 배우는 학생이 먼저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교사는 그저 학생들이 세상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생명의 탄생은 정말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릴까 말까 망설였다. 아직 열개의 알에서 일곱 개가 부화되지 않고 있었다. 어미 닭이 둥우리에서 병아리와 함께 내려온 후 알리기로 하였다.

또 지나간 3월 2일엔 토끼사육장에선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게 새끼토끼가 굴속에서 바깥으로 기어 나온 일도 있었다. 새끼가 다섯 마리나 굴속에서 나와 깜짝 놀라 실무자에게 물었더니 어미토끼가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는데, 굴속에서 어미토끼와 새끼토끼 세 마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죽었다는 것이다. 어미토끼는 그렇다하더라도 새끼토끼 세 마리는 왜 죽었을까 궁금했는데, 동물들은 어미가 갖고 있는 젖의 개수 이상을 낳으면, 자기가 먹을 젖이 없어 결국 힘이 약한 새끼는 굶어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미토끼의 살신성인(殺身成仁)에 버금가는 사생취종(捨生取種)이다. 원래 공자가 말한 살신성인은, 옳은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위하여 어짊을 해하는 일이 없고, 자기의 몸을 바쳐서 어짊을 이룬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어미토끼는 자기의 몸이 망가져 죽으면서도 새끼 다섯 마리를 살린 것이다. 어미토끼의 새끼사랑내지는 종족보존의 섭리이리라.

학교의 메신지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어미토끼의 사생취종을 알린 적이 있었다. 그 후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면 토끼 사육장에 모여서 새끼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광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다섯 마리의 토끼는 토실토실 살이 올라 지금은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호랑이 해인 2010년 경인년에 학교에 학생들의 정서함양을 목적으로 토끼사육장과 조류사육장을 만들었다. 2011년은 토끼(신묘년)의 해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토끼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배우라고 토끼장을 지었다. 그리고 교육과정에 나오는 공작, 어치, 십자매, 구관조를 키우기 위하여 조류사육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조류사육장에 들어가는 조류의 가격이 산란기라서 엄청 비싸 닭을 임시로 키웠는데 닭이 병아리를 깐 것이다.

삼일 째, 병아리 두 마리가 둥우리에서 땅으로 내려 왔다. 어미 닭이 땅 바닥에 내려와 “꼬꼬꼬….”하면서 둥우리에 올라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둥우리에 있던 한 마리의 병아리도 내려 주었다. 일곱 개의 알은 부화하지 못했다. 줄탁은 동시에 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줄탁동시는 참선하는 수행자가 스스로 깨닫기 위한 방편이고 스승이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헤르만 햇세도 `데미안’에서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구절이 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움을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임을 실제의 관찰결과로 알 수 있었다.

생명 존중 교육은 어떤 이론이나 달변으로는 학생들을 감복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줄탁동시(줄啄同時)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실제 식물을 가꾸어 보거나 동물을 키워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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