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떠오르는 역수강가의 저녁, 버드나무 아래 술상에서 모래바람 맞으며 붉은 술을 마신다 내 친구 고점리가 켜는 축의 가락은 오래 전 함께 별을 보았던 여인의 울음소리를 닮았는데 덜 익은 개고기 속에선 그저 비린 털만 씹힌다 이제껏 살았던 날의 기억들은 강 안개 속 취기처럼 흩어지고 나는 두루마리 지도 속 숨겨진 칼끝만 만질 뿐, 찌르고 찔러 한 치만 닿을 수 있다면 이 모든 번민과 두려움 함께 끝날 것인데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물은 차가워라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는 여러 세상을 다른 몸으로 살아왔던 한 사내가 칼을 안은 채 태산에 올라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수레 속 궤짝에선 번오기의 목이 소금에 절여지는데 내일이면 나는 황제를 죽일 것이다 거대한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목숨이여 인연이여 한평생 뜨거웠던 혈기여 내게 두려움 없는 용기를 다오 내게는 단 한 번뿐일 절정을 위해 저 수레에 실린 술단지들이나 오늘 밤 비울 일인데 이번 삶의 형형한 뜻 어찌 이 작은 칼끝에만 머물렀으리 수만 번 몸 바꿔 다시 살아도 나는 그저 외로운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인형일 뿐.
그 오랜 억겁의 윤회 속에서 나는 언제쯤 시라는 칼로 세상을 찌를 수 있을까 찔러서 닿을 수 있을까 평온해질 수 있을까 한 때 형가로도 살았던 내가 이제는 시라는 칼을 움켜쥐고 보이지 않는 노래의 심장을 겨냥 중인데
@영국 락 그룹 콜드 플레이 Cold Play의 <인생이여 만세 Viva La Vida>에서 제목 인용.
춘추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위세가 점차 커지던 무렵 연나라에 살던 형가는 기원전 225년 연나라 태자 번의 부탁을 받아들여 진에서 도망쳤던 장수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 지도를 바친다는 명목으로 시황제를 알현하고 그 자리에서 그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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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구 출생.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전 예술마당솔 사무국장, 대구민예총 웹진 온장 편집국장.
해설) -해설 성군경-
이탈리아 석학인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해로우면 악이라고 하며 인간사회는 에고의 교집합이라 했다. 반목이 역사를 만들고 그 기록은 승자의 것이지만 강자의 덕목은 겸손이고 약자의 의무는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이런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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