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꽃에 관한 두 편의 시
<달구벌 아침>꽃에 관한 두 편의 시
  • 승인 2012.10.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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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생길 때 나는 가끔 시를 적어가서 읽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주어지는 강연 요청이란 예외 없이 경제에 관한 것이다.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골치 아파 한다. 일반인이거나, 공무원이거나, 전문가 집단이거나, 시민단체 종사자이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내용을 사람들 앞에서 지껄이는 것의 민망함이란.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전략이 시를 읽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면전환용이다.

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그동안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자리에서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텔레비전을 틀면 전문가랍시고 나와서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고, 라디오도 공영방송 쯤 되면 시사 전문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을 달아서 경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 놓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본들 세상은 별 뾰쪽한 수 없이 마냥 그대로라는 것을 눈치채고 아예 관심을 꺼 버리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경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순간 그들은 마치 중국의 변검 공연을 하는 주인공처럼 얼굴색을 바꾼다. 거의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갑자기 심드렁해지고 온몸은 심야 취침 모드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곧, 그들의 눈빛은 마치 200억 년 전의 심연을 경험하는 듯이 아득해지고 초점이 모호해진다.

그 순간 내가 적어 온 시 한편을 꺼내들고 읽으면, 어럽쇼, 웃기는데! 라는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의 눈빛이 다시 두런두런 살아난다. 아마도 그것은 가수 싸이가 옷은 최고급으로 입고 춤은 저질로 추는 (dress classy, dance cheesy)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반응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내가 적어 다니는 시에는 정호승의 `수선화에게’가 있다. 시 가운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부분이다. 이 시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시작한다.

최근 들어서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나는 이 시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정도면 사람의 외로움이야 오죽할까. 요즘 들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외롭다는 표현에 크게 공감한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면서 이 시를 읽을 때 전해오는 눈빛의 흔들림과 호흡의 울림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자인 나로서는 사람들이 외로워하는 이유를 경제적 풍요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라고 고작 의심할 따름이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와 외로움을 맞바꾸는 것이 남는 장사인지 혹은 손해 보는 장사인지를 판단하는 데 경제학은 어떠한 지혜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무력하게 시만 낭송하고 판단은 사람들에게 죄다 맡기고 영양가 없는 경제 이야기로 도망간다.

고은의 `그 꽃’이라는 시는 짧아서 좋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석 줄이 전부다. 나는 이 시를 주로 강연의 마지막에 써먹는다. 나의 경제 문제 진단의 해법과 결론은 언제나 지역의 내생적 발전론으로 귀결된다. 지역의 내생적 발전론은 지역의 관점에서 지역 문제를 접근할 때 비로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러나 서울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지역의 내생적 발전론은 허구이다. 그것은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처럼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꽃’은 지역에서 보면 너무나 생생하고 실재적이며 또한 아름답다. 서울 중심의 사고가 위험한 것은 바로 이 같은 고정된 관점 때문이다. `그 꽃’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적 내용이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알아차린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의 표시를 나타낸다. 최근 내가 낭비하고 있는 꽃에 관한 두 편의 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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