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달구벌 아침>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승인 2012.11.0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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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고등학교 때 교련이라는 수업 시간이 있었다. 교련 시간에는 모든 학생이 교련복을 입고 군사 교육을 받았다. 여자 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련 시간이 편성되어 있었고 제식 훈련 등을 받았다. 학생회가 폐지되고 학도호국단이 조직되어 연대장이 임명되어 학생회장을 대신하였다. 당시 교복 대신에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는 남녀 고등학생을 거리에서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아침의 풍경이었다.

대학교에도 교련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고등학교의 군사 교육을 반복하였으며,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넓은 캠퍼스를 활용하여 엎드려 빡빡 기는 유격 훈련을 받았다는 점이다. 교련 시간에 두발 단속은 필수 코스였다. 군인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는 것처럼 교련 시간에 임하는 대학생도 절대로 머리가 길어서는 안 되었다. 장발을 하고 다녔던 나는 교련 시간에 그 때문에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이와 겹치는 또 하나의 장면은 오후 일과가 끝나는 정해진 시간에 거행된 국기 하강식이다. 이 시간이 되면 전국의 모든 스피커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학교에서든, 사무실에서든, 도로가에서든, 혹은 시장에서든 예외 없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국기에 경의를 표해야 했다. 본래 국기 하강식은 군대에서 하는 의식인데 당시 정부는 이를 일상생활에까지 적용시켰다. 어떤 사람은 사회 전체에 대한 이 같은 병영 논리의 확산을 비꼬아 병영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문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 아마도 이 때쯤이리라 짐작한다. 군대는 군대이고, 학교는 학교이며, 일상은 일상이라고 스님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30년 전의 군사 문화보다 더 집요하고 보다 전면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훨씬 은밀하게 지금 우리 사회와 일상을 지배하는 악덕이 있다. 소설가 김승옥의 표현을 빌리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돈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삥 둘러싸고 있다.

돈의 논리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쉽게 두 손을 든다.
병영의 논리가 군대에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돈의 논리는 시장에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해하고 있듯이 시장은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다. 따라서 상품이 거래될 때에만 돈의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옛날에는 품앗이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아온 방식이 지금은 도우미를 불러 임금을 주고 집안일을 부탁하는 사회로 변했다. 품앗이 노동이 고용 계약의 형식으로 상품화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이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것은 최근 신문에서 읽은 기사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어느 고급 백화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비장애인이 주차하여 발각되어 벌금을 물었다. 그런데 다음에 그 사람이 다시 와서 이번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은 곳에 차를 주차하고는 벌금을 마치 주차비인양 내고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는 권리는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지만 돈으로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야만의 사회는 다른 곳이 아니다.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아무렇지 않은 듯이 차를 밀어 넣고 수표를 가득 넣은 돈 지갑을 꺼내들고 까짓것 벌금쯤이야 푼돈에 불과하다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해버리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야만의 사회이다. 이는 완전 무장한 군인과 탱크를 대학 캠퍼스 내로 제멋대로 밀어 넣는 행위의 아류이자, 학생들에게 교복을 벗기고 군복을 입힌 것과 같은 폭력의 연장이다.

지금 많은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의 진전으로 빚어지는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의 대상과 범위를 줄이기 위한 탈(脫) 상품화 노력을 사회 정책의 중요한 방향으로 채택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널리 공감하게 될 때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는 비로소 온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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