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아파트와의 작별
<달구벌 아침>아파트와의 작별
  • 승인 2012.11.0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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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드디어 아파트와 작별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내가 아파트에 얹혀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맘속으로,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에 혀를 내두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본래부터 이렇게 아파트를 못마땅하게 여긴 건 아니었다. 한창 아이들을 키울 무렵엔 내가 사는 데가 어딘지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장성해 덜 손이 가게 되고 그만큼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자 아파트가 주는 자괴감을 물리치기 어려웠다.

그런데 아주 갑작스레 아파트와 작별하게 되었다. 주택으로 이사 가자고 아내가 결단했고 난 결단에 쾌재를 부르며 동의했다. 아파트라는 게 그랬다. 나는 그 거대하고 기괴한 괴물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최인호가 그의 소설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를 인간관계의 절대적 소외와 고립의 상징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나는 아파트를 출입할 때마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도 단절된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아연 놀라곤 했다.

그건 뭐랄까. 묘한 슬픔이었다. 몇 년을 살면서도 서로 누구인지 모르는, 그러면서도 위아래 포개어 살아야하는 아파트의 삶이라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더 불편해 한 건 아파트들이 은근히 부추기는 세속의 욕망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진 듯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주거 시설보다는 재테크의 수단이요, 투자처로 각광받아온 게 사실이다. 참으로 이상한 건 그 욕망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는 거다.

아파트에 살게 되니, 아내가 전해주는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랄까 이런 걸 듣게 되고,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하게 되니, 아파트가 요물은 요물이었다. 더 가관인 건 아파트의 이름들이다. 누가 아파트 이름을 작명하는지, 한국의 아파트들은 이름만 놓고 보면 영원한 지상천국이 도래하는가 싶은 착각을 줄 정도로 화려하다 못해 아예 `계급적’이기까지 하다. 이래서 어쩌면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사는 게 아니라 아파트의 욕망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아파트와 작별하고 주택으로 이사하니 불편하면서도 몸과 맘에 여유가 생겨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일단 걷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래도 주차가 불편하다보니 차를 그냥 두고 웬만하며 걷게 되었다. 그리고 걷게 되니, 아차, 내가 사는 마을이 천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의 골목이, 가게가,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와 때로는 안부를 묻게 되고 때로는 좌판의 과일, 채소 등을 사주는 등 마을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단 이렇게 더 걷게 된 건, 그러면서 마을과 만나게 된 건 아파트와 작별하며 얻게 된 가외의 소득이다.

여유롭게 걸으며 마을을 오가고 집을 출입하다보니, 집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이 가게 된 것도 아파트와 작별하며 생긴 소득이다. 이사 온 주택은 오래된, 낡은 주택이다. 그렇다보니 여기저기 수선할 일이 제법 있다. 그러나 대책이랄 게 없다. 아파트라면 관리소에 의지하겠지만 이제 이건 우리 가족의 몫이다. 가족이 머리를 맞대어 수선할 방법을 마련하거나 직접 손을 대는 등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이런 법석 중에도 화분의 식물들은 잘 자라주어 고맙기만 했다. 베란다에 방치된 화분들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할까?

새로 이사 온 주택의 여기저기를 차지한 화분들의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생명을 꽃피우며 자라주었다. 물론 아파트와의 작별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주차는 영 불편한데다가, 여름이 다 지난 이 스산한 가을에 모기는 왜 여전 잉잉 대는지, 과연 추운 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걱정이 크긴 하다. 그래도 아파트와 결별하니 좋긴 하다. 땅을 밟아 좋고 걷게 되어 좋고 더구나 투기와 재테크의 부질없는 욕망의 네트워크에서 탈출하니 좋다.

욕망이 무서운 건 그 끝이 없는 까닭이다. 주택으로 이사 오니, 나는 그 욕망과 헤어져 좋고, 더 솔직해진 우리 가족들의 생활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주택의 불편을 계속 감수할 작정이다. 내가 사는 이 집이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등장하는 그 남자의 집처럼 매혹적인 집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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