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리더십, 안철수의 빈자리
여성주의 리더십, 안철수의 빈자리
  • 승인 2012.11.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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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여 전 일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아니었다. 진보, 보수 진영 사이의 대회전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학교급식 정책을 둘러싼 다툼을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 라는 이념 논쟁으로 확대시키고 물러난 뒤에 치루는 선거였기 때문이었다.

선거운동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후보를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대목이었다. 서울시장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며 시민들의 50% 이상 지지를 받고 있던 안철수 교수는 지지도 5%대의 박원순 시민운동가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던 터라 그가 박원순 후보의 선거운동에 나서면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안교수가 박후보를 지원할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선거운동이 종반으로 무르익던 어느 날 안교수가 박후보를 찾아갔다. 그리고 편지를 전해주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편지였다. 잔잔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편지는 우리에게 고향부모님의 향수를 느끼게 하며, 그리운 친구를 연상하게 만들고, 연인에게 가슴 떨리며 썼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편지’라는 매체야말로 얼마나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또한 지난 시절 우리들을 한 데 묶어주던 ‘공감(共感)’의 매체였던가?

안철수 교수는 ‘청춘콘서트’를 통해서 이미 공감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젊은이들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하는 공감의 리더십을 통해서 그는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고 방황할 때 포용하고 이해해 주었다. 소통과 공감의 리더였다.

그가 이번에도 공감의 리더로서 면모를 확인시켜주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던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단일화 과정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지지자들의 걱정이 커지자 그는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라고 선언하고 대통령후보 자리에서 내려왔다. 단일화를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고 하여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는 문재인과 안철수를 모두 살리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만일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파국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둘 다 패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둘 다 패배자가 될 수도 있었던 제로섬 게임의 상황을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사퇴를 통하여 상생의 게임으로 바꾸어놓았다. 둘 다 승리자로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철수는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정치개혁의 열망을 보여주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이제 문재인은 야권 단일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안철수는 양보의 미덕을 갖춘 정치개혁의 표상으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더 강화시키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안철수의 리더십을 ‘여성주의 리더십’이라고 평한다. 안철수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그가 세상을 바꾸려는 방법은 양보, 공감, 화해와 상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눔, 배려, 상생, 돌봄, 협력, 평화와 같은 가치가 여성주의적 가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미래의 정치적 리더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동안 정치를 지배했던 분열과 대립, 투쟁과 같은, 낡은 가치를 넘어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후 그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여야 후보들의 각축이 흥미롭다. 박근혜 후보 측도, 문재인 후보 측도 모두 안철수 후보가 내건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자임한다. 문재인후보측은 안철수 후보와 한 새정치공동선언을 꼭 지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박근혜 후보측에서는 안대희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이 오래 만에 등장하여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과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정치개혁이 비슷하다고 힘주어 주장하였다. 안철수 후보가 내놓은 정치적 공간을 미리 차지하려는 전략이다.

좋다. 그런데 여야 후보가 알아야 할 것은 안철수의 가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양보, 공감, 협력, 상생과 같은 여성주의적 가치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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