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우리가 남이가?’가 필요한 순간
[백정우의 줌인아웃] ‘우리가 남이가?’가 필요한 순간
  • 백정우
  • 승인 2019.10.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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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히어로' 촬영현장.

 

대구 로케이션 근작 두 편에 관한 단상-'북성로 히어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도시와 영화를 다룬 책을 출간했다. 영화 선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대구 편이었다.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순간을 장식했고 숱한 인재를 배출한 도시임에도, 정작 대구와 영화를 이야기하려니 마땅한 게 없었다. 로컬무비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구 정서를 담고 대구에서 촬영한 영화를 만나는 게 이다지도 힘들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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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히어로' 촬영현장.

 

 

‘북성로 히어로’
대구 기획력·서울 스태프 합심
폭염 속 북성로 일원서 로케이션
디지털 보정·비주얼 이펙트 작업
기술력 부각시킨 독립로컬영화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여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단편영화 촬영 소식이었다. 올해 설립된 신생 제작사가 만드는 로컬무비인데 심지어 제목이 ‘북성로 히어로’라고 했다. 연출과 주인공을 배우 한상진이, 여주인공은 유정래가 맡는다고 했다. 홍상수와 류승완 영화에 참여했던 김영철 촬영감독과 스턴트 베테랑 서범식 무술감독까지 라인업을 꾸렸단다.

로케이션은 대구 북성로 일원에서 진행되었다. 콘티를 놓고 몇 번의 준비를 거치고 리허설에 이어 슛 사인이 떨어졌다. 한상진이 발에 차이고 뒤통수 맞는 장면이다. 유정래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었다. 과연 몸을 잘 쓰는 드문 여배우라는 칭찬은 허언이 아니었다. 땀이 비오듯 흐르는 가운데 촬영이 이어지던 오후, 스마트폰에는 대구·경북지방 폭염경보 문자가 울렸다. 이런 고통의 기록이 모여 테이크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탄생한다. 주목할 것은 제작비의 3배 넘게 후반 작업비용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이다. 30분짜리 단편독립영화에 디지털 보정과 비주얼 이펙트 등의 고급스런 작업이 보태졌다. 제작사가 예산조절에 느슨했거나 감독이 욕심을 부렸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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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히어로' 촬영현장.

4편까지 릴레이 제작을 예정했다는 걸로 보아, ‘북성로 히어로’는 끝내 장편영화로 완성할 심산이었다. 전체 품질을 위해 1편부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첫 번째와 비교해 후속작을 저품질로 만들 순 없을 테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완성도에서 미흡한 점도 많다. 북성로에서 찍었음에도 골목과 구도심 정서가 뚜렷하지 않다. 드론을 띄워 북성로 일대를 버드아이 뷰(birdeye-view)로 조망했으면 공간성이 더 드러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작업에 응원을 보내야한다고 나는 믿는다. 로케이션 지원 수준에 머물던 대구에, 독립영화진영 외에도 영화를 만드는 집단이 있다는 것, 그 동력을 뒷받침할 만한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것. 탈 지역성을 모색했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대구의 기획과 서울에서 온 스태프가 합쳐진 드문 사례, 그러니까 대구 자본으로 만든 독립영화이고 대구에서 찍은 로컬영화이면서 기술력을 부각시킨 단편영화이다.

10월의 어느 가을밤, 북성로 골목에 위치한 한옥에서 ‘북성로 히어로’의 시사회가 열렸다. 알전구 영롱한 잔디 위에 40여 명이 둘러앉아 영화를 보았다. 그 자체로 희귀한 체험이었다. 누구나 꿈꿨으되 쉽사리 손대지 못한 지점에 ‘북성로 히어로’가 우뚝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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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미스터리' 스틸컷.
 

‘힘을 내요 미스터리'
동대구역·시민야구장·동성로 등
대구지역 곳곳 촬영장으로 활용
영화 전반 ‘대구지하철참사’ 기반
상업 요소보다 소방관 후유증 주목


그러고 보니 지난봄, 동성로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영화촬영 현장을 목격한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곱슬머리 퍼머로 분장한 차승원이 촌티 물씬한 러닝셔츠차림으로 걷는 신이었다. ‘북성로 히어로’ 후반작업 소식이 전해질 때 즈음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추석에 개봉한 이계벽 감독의 ‘힘을 내요 미스터리’다. 소위 ‘착한 영화’다. 데뷔작 ‘럭키’가 그랬듯이 ‘힘을 내요 미스터리’도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갈등은 있으되 모진행동으로 주인공을 벼랑 끝까지 몰지 않는다. 조폭이라고 해봐야 어리숙한 동네 불량배 수준이다.

영화의 시작은 서울이다. 극중 차승원의 딸 샛별이가 이승엽 선수 사인 볼을 얻기 위해 대구로 향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대구 로케이션으로 채운다. 동대구역과 대구시민야구장과 중부소방서와 동성로와 교동 일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보다 더 중요한 건 영화 전반을 추동하는 시공간 배경이 대구지하철참사라는 점이다. 많은 인명을 구하고도 자기 아내를 떠나보낸 소방관의 사고후유증을 중요기제로 삼았다. 이만하면 근래 보기 드문 대구로컬영화라 할 만하다(이제껏 내가 만난 가장 명징한 대구로컬영화는 김삼력 감독 작품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 닿길’(2005)과 ‘아스라이’(200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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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미스터리' 스틸컷.

이계벽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안전문화재단과 소방관을 만났고 그들의 아픔이 단순한 슬픔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16년 지난 사건을 떠올리는 일도 아프지만 잊혀진다는 사실이 슬픈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때문인지 비극적 사건을 견인하는 드라마 특성상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흥행을 추동하는 한방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러면 좀 어떤가. 안타까운 것은 ‘힘을 내요 미스터리’가 담론의 수혜를 입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본 사람도 주위에서 만나기 힘들었다(대구지역 관객점유율은 불과 5.5%였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대구 내부의 어떤 논의도 없었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어딘가에 유폐된 느낌이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몰랐다.

마이클 로스버그에 따르면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재현할 때 조심해야할 첫 번째는 ‘상업적 유통가능성으로 인한 선정주의 함몰’이다. 과도하게 상업화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접근해야한다는 것이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최소한 이 덕목을 굳건히 지켰다. 눈물샘을 터뜨릴지언정 코미디가 되지 않도록 유의했고, 신파의 덫을 피하고자 건조하고 덤덤한 냉소와 손잡진 않았다. 내가 이 영화를 손잡아주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래 대구의 젊은이들이 각종 영화제와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구출신 청년들이 세운 영화사도 데뷔작을 내놓았다. 문제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다음 영화를 찍을 동력을 얻는 일이다. 자기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너무도 힘든 일. 멀티플렉스가 포위한 극장지형도에서 소자본 독립영화가 발붙일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배급 상영과 관련한 정책지원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북성로 히어로’가 어떤 경로로 어느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대구에서 영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례가 되고,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예술계의 동조와 합의도 필요하다. 이를 가능케 만드는 건 담론의 활성화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글로 쓰는 일련의 작업이 이어질 때 담론은 생겨난다. 우리 도시를 보여주고 도시 정서를 담은 영화를 대구사람이 아니면 누가 앞장서서 얘기하겠는가. ‘우리가 남이가?’는 이럴 때 필요한 구호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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