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고양이에게 맡긴 생선가게
<대구논단>고양이에게 맡긴 생선가게
  • 승인 2010.10.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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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되지만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처럼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 많은 돈을 맡겨놨다가 찾으려고 하면 “언제 맡긴 일이 있느냐”며 시침을 떼는 일도 있다.

심지어 돈 문제에 관한 한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믿지 못하여 생기는 갈등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친형제 간에도 소송이 벌어지는 수가 허다하다. 이런 일은 세상에 하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어서 사건내용이 보도되면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체념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다.

그러나 기분은 몹시 언짢다. 어쩌다가 세상 일이 이다지도 험악해지는 것일까.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당한 배신이 오죽 가슴을 쓰리게 할까. 그래서 법에 의탁하게 되고 신뢰를 다짐하기 위하여 사전에 안전대책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각서나 확인서 또는 보증서 등이다. 그까짓 종이쪽지에 그적거린 것이 무슨 대수냐 하면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배신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 손으로 쓴 문서라 일말의 양심은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다짐하는 것이 이른바 공증(公證)이라는 것인데 변호사 앞에서 양측이 신분을 확인하고 법적인 문서를 만들기 때문에 1심판결의 효력을 가진다. 이러한 안전대책을 세우더라도 배신은 나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거래를 할 때에는 평소의 언어와 행동 그리고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에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겉으로 봐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까지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것이기에 배신을 당할 개연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난번 어떤 마을에서 곗돈과 빌린 돈 수십억을 떼먹고 야반도주한 여성의 경우에는 근 10년 동안 동네 사람들에게 온갖 봉사를 다 하는 척 하면서 꾸준히 돈 거래를 해왔다고 한다. 이자도 넉넉하게 주면서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자 많이 받는 맛에 홀린 동네사람들은 남의 돈까지 끌어다가 10억이 넘는 돈을 대준 사람도 생겼다. 이를 몽땅 챙긴 여성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그렇게 오랜 세월 믿음을 줬던 사람들은 울며불며 경찰에 고발했지만 그동안 썼던 이름조차 가명인 것이 드러났다.

결국 동네사람들은 허공에 뜬 유령과 거래를 해온 셈이다. 그들이 이 여성을 믿은 것은 오직 이자를 많이 줬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행각에서 원금을 요구하면 더 많은 이자를 줘서 원금요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원금에서 이자를 떼어주고 알돈은 뒷구멍으로 빼돌리는 것을 오직 이자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오인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흔히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 놨다’는 말을 하게 된다.

비린내 나는 생선은 고양이에게는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생선을 몇 마리나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사자나 호랑이도 배가 고파야 다른 짐승을 쫓지 제 배 부르면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인 팔라도 결코 손대지 않는다.

따라서 생선가게를 맡은 고양이도 한두 마리의 생선은 먹을망정 나머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신자를 지칭하면서 `생선가게 고양이’가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들먹이고 있다. 한두 마리 먹는다고 가게가 거덜 나지도 않을 텐데 고양이 처지로서는 억울하다.

정작 인간들은 배신을 밥 먹듯 하고 상대를 망쳐놔도 철저하게 망하게 한다. 재산의 손실은 나중에 보충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 단적인 사건이 이번에 터진 사회공동모금회라는 단체의 횡령비리 사건이다. 사회공동모금회는 법적인 보호를 받는 단체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합법적 기부를 받는 단체다. 이 단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크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캠페인에 동참하는 국민이 해마다 늘어나 처음에는 기업들의 기부에만 의존하던 것이 이제는 전체 모금액수의 40%를 일반국민의 소액기부로 채운다. 1년이면 수백억의 돈이 모인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소정의 비용이 들어간다. 사무실도 유지해야 하고 시설도 해야 하며 상당액의 인건비도 지출된다. 그런 비용을 지출하는 것까지야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비리는 고양이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또다시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겼다’는 표현 외에는 다시 쓸 말이 없게 만든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기부 받은 돈을 직원들이 수천만 원씩 몰래 빼내어 제 배를 채우는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흔해빠진 횡령비리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장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찧게 된 것 아닌가. 언젠가 수재의연금을 꿀컥 삼킨 신문사가 물의를 일으킨 것보다 사회공동모금회 건은 더 큰 충격이다. 기부문화가 한껏 고조되고 있는 판국에 찬물을 끼얹었다. 엄중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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