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사정’ 없이 `공정’은 가능한가?
<대구논단>`사정’ 없이 `공정’은 가능한가?
  • 승인 2010.10.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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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대구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서울광장에 굳게 질린 빗장이 덜컹거리고 있다. 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안을 시의회가 두 차례나 의결했지만 시장이 공포하지 않자 시의회의 의장이 지난 9월 27일 직권으로 공포했다. 이에 맞서 오세훈 시장은 무효 확인 소송을 대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지방의화와 지방방행정기관의 치열한 공방 가운데 선 사법부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광장의 문제만큼 한국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최인훈은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밀실만 있고 광장이 죽은 사회’라고 지적했다. 지난 50년 동안 많은 개선과 발전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굵직한 사건들에는 `밀실’이 `광장’에 몰래 스며들어 얼룩지게 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외무부의 특채 파문, 검찰인사들의 은밀한 접대 등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아버지, 스폰서 등 `밀실라인’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런 사건들을 하나씩 추적하기보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살펴보면 한눈에 문제 파악이 가능하다. 후보자들에게 불거지는 각종 의혹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이 공공의 원칙과 도덕을 해친 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고소영’과 `S라인’ 등으로 불리는 `비선(秘線)라인’이 후보자 선정에 엮여져 들어갔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밀실이 비선라인을 통해 광장에 잠입하여 권력을 사유화하면, 시스템이 무력하게 되는 조짐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사유화된 권력은 다시 상대적 약자의 밀실에 침투하여 개인의 권리를 짓밟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이 상대적 약자는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약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금융회사의 대표, 시민단체의 변호사, 심지어 여당의 현역 의원들까지도 비선라인을 통한 은밀한 사찰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권력기관의 사찰문제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개인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 통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의견을 민주당의 정세균 전 대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남경필 의원, 그리고 여러 신문의 칼럼도 개진했다.

비판에 담긴 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빗나간 진단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체주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광장이 밀실을 압살하는 것인데 반하여, 우리의 문제는 밀실이 광장을 오염시키는데 그 핵심이 있다. 공권력이 사생활을 화석화시켜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전체주의와는 달리 우리사회에서는 사적 이해관계가 공공 시스템을 왜곡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진단의 차이는 처방의 방향을 바꾼다. 우리사회를 전체주의의 성격을 띤 사찰공화국으로 규정한다면, 공권력 그리고 국가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하지만 밀실정치에 의한 공적 시스템의 왜곡으로 문제를 규명하면, 밀실의 부당한 영향력을 차단하여 광장의 기강을 바로잡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릇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음”이 사정(司正)의 사전적 정의다. 공정사회의 첫 단추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정사회는 “공평하고 올바른” 사회를 뜻한다. 공공의 원칙과 윤리가 광장에서 꽃피고 사적 관계의 정분이 밀실에서 무르익으며, 두 영역이 각기 자율성을 갖고 조화를 이루는 사회다. 광장이 밀실을 말살시켜도, 밀실이 광장을 얼룩지게 해도 공정함은 자취를 감춘다.

이런 맥락에서 “공정사회가 사정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 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는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보게 된다. 밀실의 광장 침입을 사정의 칼로 자르지 않는다면, 공정사회가 어떻게 가능할까?

광장은 여기저기 골짜기마다 졸졸 흐르는 개인의 의견들이 모여 여론의 물줄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다양한 여론들은 광장에서 서로 대화ㆍ소통하는 가운데 편견과 사욕이 정제되고, 합리성과 공공성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낸다.

여러 의견과 여론의 물줄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광장은 물을 고이게 만들고, 고인 물은 썩는다. 폐쇄된 광장의 불투명성은 밀실을 유혹하여 은밀한 지하통로로 오염된 폐수가 잠입된다. 부패한 물길은 차단하고, 투명한 소통의 물길로 광장을 채워야 공정사회가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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