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펜은 칼보다 강하다
<대구논단>펜은 칼보다 강하다
  • 승인 2010.11.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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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학 안경광학과 교수

지난 주 어느 여중생의 어머니가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서울가정법원이 내린 이혼허가 판결 한 건이 눈길을 끌었다. 15세 여중생인 그 학생은 재판과정에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부모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서를 낸 이유는 단 한 가지, 편의점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월 150만원으로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 아버지는 2008년 5월경 돈을 벌어오겠다며 지방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해 `한 부모 가정’이 되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펜을 들었다고 했다.

그 진술서에는 “이혼이라는 말은 쉽게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면 한 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대학교까지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알고 있다”며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요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고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의 받아들여 “부모의 혼인관계는 사실상 파탄 난 것으로 보이므로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을 보며 언젠가 어느 신문에서 읽었던 감동적인 편지 기사가 생각났다. PC게임장을 운영하다 단속돼 재판과정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빠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이 안타까운 사연을 4장의 편지에 담아 법원에 보냈는데 그 편지에는 “지난해 아빠와 엄마가 이혼해 지금은 아빠가 엄마를 대신해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있는데, 아빠가 엄마를 꼭 찾아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요즘은 눈물만 흘려요. …

오빠를 통해 `아빠가 큰 잘못을 저질러 판사님에게 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라면서 “판사님, 우리 아빠를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아빠가 잘못하지 않도록 제가 아빠 곁에서 지키겠어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또 “우리 아빠는 동대문 시장에서 봉투 장수를 하며 우리들 공부도 가르치고…

비가 오는 날 아빠를 찾아 시장에 갔었는데 아빠는 우산도 없이 봉투를 팔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답니다.”라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이번 겨울 방학이 되면 아빠, 오빠와 함께 엄마를 찾아 친척집에 갈 생각에 잠 못 들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엄마가 있다고 자랑하고, 2학년 때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갔던 롯데월드에 온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이 담겨져 있었다.

삐뚤삐뚤하지만 정성스러운 편지 덕분인지 그 아빠는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과 함께 16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고, 딸은 아빠와 함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몇 해 전 40대 초반의 아내가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남편의 석방을 위해 “판사님, 남편을 제게 보내주세요. 제가 마지막으로 남편을 돌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사연의 편지가 있었다.

남편은 음주운전과 음주교통사고로 벌금, 집행유예, 실형의 순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이었는데 또다시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였다. 종전의 예에 따르면 피고인이 실형을 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판사님. 남편은 간암 이예요. 술을 끊지 못하더니 음주운전을 밥 먹듯 하였고, 간암에 걸렸어요. 곧 죽을 거예요. 치료할 돈도 없어요. 제게 보내주세요.”라는 아내의 간청과 간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서 덕분에 남편은 석방되었다. 그 이듬해 겨울 담당판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거기에는 “판사님 감사합니다. 제 남편은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여기 사망진단서를 동봉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들은 종종 있었다. 한 5년쯤 되었을까? 코카인을 복용하고 운전하다 경찰에 체포된 핵주먹 타이슨은 재판에서 최초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최종판결에서 판사는 타이슨에게 구류 24시간과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 360시간을 선고했다. 타이슨이 징역형을 면할 수 있었던 데는 전처 2명이 재판부에 관대한 처분을 호소한 편지가 톡톡히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칼은 사람을 위협할 수는 있어도 정신까지 점령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글은 사람의 정신과 일생, 나아가 세상과 역사까지도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재미로 올린 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생명까지 위협받기도 하는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글들로 온통 도배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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