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워킹맘 총리의 사임을 바라보며
[결혼이야기] 워킹맘 총리의 사임을 바라보며
  • 승인 2023.02.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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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회사 대표
교육학박사
최근 뉴질랜드 총리가 저신다 아던(42)에서 크리스 힙킨스로 바뀌었다. 올해 45살인 신임 총리는 5선 의원으로 경찰·교육부 장관을 지내다 저신다 아던 전임 총리가 전격 사퇴선언을 하면서 물러남에 따라 신임총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뉴질랜드 총리의 사임과 취임 과정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교체과정이 무난히 이뤄지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아던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발표나 그 이유가 놀라웠다. 젊은 여성총리로 취임부터 관심을 모았고 2018년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르면서 이른바 ‘저신다 마니아’ 현상을 낳기도 한 주인공이어서 사퇴연설을 지켜본 언론들도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들 중에는 그녀의 솔직함에 감동했다는 반응들도 많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드물다. 더욱이 자신이 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거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는 더 찾아보기 어렵다. 늘 자신이 적임자이고 가장 일을 잘 해낸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스스로 정치를 그만두거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경우는 보기 어렵고 늘 타의에 의해 물러나게 된다. 아던 총리는 이런 상황과는 달라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사임의 이유로 '번아웃'을 들었다. 재임 중 출산을 해 한 나라의 지도자이면서 워킹맘이 된 그녀는 여러모로 매우 힘든 상황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총리로서 시간을 보낸 그녀는 집에서는 딸을 위한 생일 케이크를 구웠다. 때론 하루 종일 회의에서 입고 있었던 옷에서 기저귀 크림 얼룩을 뒤늦게 발견하면서 당혹해 했다는 등의 양육의 고충을 SNS에 토로하기도 했다. 4살 난 딸을 둔 그녀는 사임 연설을 하면서 워킹맘의 고충을 얘기했다. 그녀는 “정치인도 인간이고...모든 것을 하고 나면 떠날 때가 된다. 제겐 지금이 그때”라며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딸이 학교에 입학할 때 딸 곁에 “있어 주고 싶다”면서 사실혼 상태에 있는 배우자에게 “드디어 우리도 결혼식을 올리자”고도 했다.

물론 아던 총리의 사임에 정치적 계산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워킹맘으로서 솔직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힘든 상황들을 듣고 있으면 연민이 느껴진다.동시에 그녀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워킹맘들의 고충들을 대변해주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로 떨어지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이 가장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떠올라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백가쟁명식 대안들이 여기저기서 제시되고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늘 부족하고 미흡해 보인다. 특히, 아던 총리가 총리직 사임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워킹맘들의 육아 고충은 실로 크고 심각한데도 대책은 여전히 부실한 편이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고 육아를 위한 각종 지원이나 배려들이 제도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 이러한 것들이 결혼적령기에 있는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 직장인들의 결혼을 미루고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때문에 어쩌면 워킹맘들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비로소 만혼이나 비혼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남성과 거의 같은 비율로 대부분 직장에서 일을 한다. 일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제는 결혼만큼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일이냐 결혼이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하고 할 수 있게 도움도 주고 지원도 해야 한다. 결국 오늘의 여성들에게는 일과 함께 임신출산과 육아 부담이 동시에 주어져 그만큼 고충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것을 사회가 함께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줘야 비혼이나 만혼 나아가 저출생 문제까지도 해결될 수 있다.

워킹맘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의 직장에서의 현실은 배려가 충분하지 않다. 출산이나 육아휴가를 가면 눈치가 보여 지고 여러 가지로 부담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여성들이 쉽게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갖기가 쉽지 않다. 정책적으로도 여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저출생 문제의 극복은 비용과 시간을 아무리 투자해도 구호에 그칠 뿐이고 겉돌 수밖에 없다.

워킹맘이었던 현직 여성총리가 일과 육아의 고충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5년 이상 뉴질랜드 총리를 지내며 최연소 총리, 총리 재직중 아이를 낳고 6주간 출산휴가도 다녀왔으며 모유 수유를 이유로 3개월 된 딸과 함께 미국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등 숱한 화제를 낳은 저신다 아던 총리. 그녀가 결국 오늘의 수많은 워킹맘들의 육아 고충과 여성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생생하게 말하고 보여주었다. 예쁘게 자란 딸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함께 걸어가는 밝은 모습의 아던 총리를 미리 떠올려 본다. 그녀의 솔직함과 인생 2막을 응원하며 더 멋진 또 다른 인생 3막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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