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이찬슬 스픽스 대표 ‘동물원 + 섬’ 아이디어…인적 드문 외딴섬에 기적 일구다
[나는 청년입니다] 이찬슬 스픽스 대표 ‘동물원 + 섬’ 아이디어…인적 드문 외딴섬에 기적 일구다
  • 윤덕우
  • 승인 2023.06.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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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4개 건너 겨우 닿는 ‘안좌도’
사람 모이는 마을로 변화 계획
전기도 없는 폐교서 생활하며
지역 혁신 아이디어 힘 모아
낯선 청년들의 겁 없는 도전
처음엔 응원보다 우려 더 많아
조금씩 변화해가는 마을 보며
지역사회도 마음 열고 적극 지원
이찬슬 대표2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폐교를 정비해 만든 우실동물숲에서 청년들이 앵무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찬슬 대표
아무도 찾지 않던 섬마을을 명소로 만든 이찬슬 스픽스 대표가 2022년 9월, 로컬에서의 사회적 가치 창출과 확산을 고민하는자리(SOVAC)에서 사례발표를하고 있다.

◇지역에는 고유하고 특별한 맛을 만들어 낼 인재가 필요하다

종가의 음식들은 지역별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500년 이상 조선의 도읍지였던 서울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들이 결집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함과 화려함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충청도는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데 집중하여 소박한 음식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강원도는 육류나 젓갈을 적게 쓰고 멸치나 조개를 넣어 담백한 음식 맛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종가에서는 종부에서 다음 세대 종부로 음식 맛을 이어나감에 있어서 종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함께 전수해 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종가의 음식은 세상 그 어떤 음식도 범접할 수 없는 품격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즉, 종부라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는 종가에서 길러진 독보적이고 유일한 인재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종가의 음식 레시피는 서양의 유명 음식처럼 디테일하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전승되어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확한 계량 없이 ‘손맛’으로 일컫는 종가의 감각에 의존하여 구전에 의해 조리법이 이어져 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종가의 음식문화는 그 집안의 정체성을 이어나갈 인재에게 철저한 소양교육을 제공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예측 불가능한 상황대처 능력을 배양토록한 우리 고유의 교육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종가 음식은 그 집안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신세대 종부의 센스가 결합되어 발전되어온 산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혁신적인 청년들을 일컬어 ‘로컬크리에이터’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지역의 인구감소와 공동체성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다양한 정책적 지원(청년문화활동지원, 창업지원 등)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사회가 청년세대에게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이어나가며 기대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기업에서 만들어 내는 만두의 맛처럼 뻔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같은 재료를 손에 쥐고 있더라도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분명히 알고 그동안 그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 한 새로움으로 승화시켜 보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뻔한 맛을 거부한다면 특별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에게 조건 없는 프러포즈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

목포 육지를 끝으로 섬 4개를 더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작은 섬 안좌도의 변화는 2021년에 시작되었다. ‘동물원(zoo)과 섬’을 결합한 최초의 마을 ‘주섬주섬 마을’ 만들어 보이겠다며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응모한 스물 여섯살 청년 이찬슬 대표(스픽스)의 등장이 그 시작이었다.

이찬슬 대표와 그의 동료들의 계획은 놀라울 만큼 신빙성 없고 터무니없었다. 앉아서 회의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은 섬마을을 청년이 모여드는 마을로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활동 기간은 7개월 남짓이었다.

“처음에는 응원보다 우려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허무맹랑한 계획을 하필이면 왜 외딴 섬에서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죠. 그때마다 저는 자신 있게 말했어요. 제로의 땅에 들어가서 분명한 점하나를 찍고 나오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극한의 오지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청년이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이죠.”

이 무렵, 이 대표를 선두로 모인 다섯 명의 청년들은 섬 안에서 생활하며 자신들만의 힘으로 섬에서 만들어 낼 수 혁신 그 자체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 시간은 점점 길어져 3개월을 넘겼는데, 이대표는 이 시간을 통해 얻게 된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고 회상했다.

“사업기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을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위 분들은 모두 불안해하셨어요. 그렇지만 우리 다섯 명은 이 시간이 섬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파악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 기간 동안 저희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열다섯 명이나 모았죠.”

관건은 공간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과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안군 공무원들이 관사로 사용하다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몇 년째 방치된 건물을 청소하여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先허락(허가) 後정비가 상식적인 절차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이 선택을 통해 생활공간 확보라는 한 가지 문제는 확실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물색하던 중 2017년에 문을 닫은 안좌중학교 팔금분교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폐교를 임대할 수 있는 방법을 관할교육청에 문의한 결과, 행정절차에만 최소 석 달이 걸린다는 안내 외에는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말 간절했습니다. 행안부 사업으로 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은 네다섯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죠.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또다시 先정비-後허락을 택할 수밖에요. ‘무단 사용하거나 무단 출입 시 손해배상과 형사고발 조치’라는 경고문구가 두렵기도 했지만 생활공간을 확보했을 때처럼 청소부터 하고 밀어붙이는 방법이 유일했죠.”

현재에 이르러 누군가는 그들의 지난 행보가 ‘무단 점거’였다고 표현하지만 이 대표와 동료들은 단 한 번도 그것을 남몰래 은밀히 행한 적이 없었던 당당한 요구였다고 말했다.

“폐교에 들어간 우리들은 청소부터 했어요. 그리고 제가 10대 초반부터 키워온 앵무새들을 데려와 작은 동물원을 조성했죠. 그리고 한 친구는 옆 교실에 거북이 운동장을 만들었어요. 사람은 좁은 통로로 다니고 거북이는 운동장을 걸어 다니는 콘셉트로 말이죠. 그 외에 목공예를 하고 싶은 청년들은 목공방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청년은 미술관 겸 작업실을 만드는 등 교실 하나하나를 청년들의 공간으로 꾸며나가기 시작했죠. 이때 저는 각 교실에서 만들어질 프로그램의 연계성을 고민했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상태에서 말이죠.”

이 대표는 이 무렵부터 그들의 도전을 우려하는 사람들보다는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각 부처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하여 합법적으로 폐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적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생각해요. 변화와 혁신을 보여줄 기백 넘치는 청년의 적극적인 활동을 원한다며 지역사회도 기백 넘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청년이 지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길 원한다면 목적이나 방법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안 되는 것도 가능하게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주체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지역사회가 청년에게 보내는 진정한 프러포즈죠.”

◇ 경험 부자는 그 어떤 미래도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다

2021년, 3개월여의 짧은 시간 동안 청년들이 집중한 ‘공간의 구성’, ‘콘텐츠의 조합’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던 섬마을을 새로운 명소(우실동물숲)로 재탄생 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청년들의 힘으로 천지개벽을 이뤄낸 것이다.

“주섬주섬 마을을 만들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더 향기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도시에서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고민이죠. 결국 제가 뿜어내는 향기가 제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를 더 객관화해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이찬슬 대표는 현재 자신이 가진 건 패기와 열정뿐이지만, 자신의 미래를 ‘설레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춘은 맛있는데 빨리 녹는 아이스크림과 같죠. 청춘이 녹아버리기 전에 많은 경험과 도전으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인다면 그 어떤 험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어요. 섬에서도 살아남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두렵지 않거든요.”

지역사회는 지금도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취·창업시 지원금을 주겠다는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뻔한 맛은 그 누구도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종가의 종부가 그래왔듯이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보적이고 유일한 맛을 만들어 낼 청년을 원한다면, 또 주섬주섬 마을의 이찬슬 대표가 만들어 냈듯 지역의 지리적·환경적 한계를 특별함으로 승화시킬 청년을 원한다면, 지역사회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더 많은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노력을 더 파격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곳곳에 이찬슬 대표와 같이 기백 넘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더 없이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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