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체포동의안,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목요칼럼] 체포동의안,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 승인 2023.06.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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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객원논설위원 행정학박사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휘말려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당초 가결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표결 전 한동훈 법무장관이 돈 봉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이 20여명 된다고 공개한 것이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지만, 찬성하기로 당론을 정한 국민의 힘과 달리 자율투표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이 얼마 전까지 같은 당 소속이었던 두 의원에 대해 대부분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지난 3월 자당 소속 하영제의원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바 있는 국민의 힘은 "국회가 방탄처가 됐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라며 민주당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의원 불체포특권은 17세기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의원을 체포·구금하여 의회를 무산시키려 한 사건 이후 의회가 '의회특권법'을 제정하여 의원을 임의로 체포·구금할 수 없도록 한 것에서 비롯된 왕권과 의회 사이에서 왕이 의원을 구금해 의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의도를 사전에 차단해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제도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현재 많은 국가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특권과 함께 체포동의안제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행정부의 불법적 억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의 자주적인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국회운영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 취지로 시행된다.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헌법부터 국회의원에게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원 불체포특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넘어올 때마다 여·야 또는 계파 사이에서 정쟁이 벌어지고, 이를 막기 위해 소위 '방탄 국회'가 열린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 이유는 국가마다 불체포특권을 운영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헌법에서 '반역죄, 중죄, 치안위반죄'를 불체포특권의 예외로 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혐의가 모든 범죄를 포괄한다는 연방대법원의 해석에 따라 불체포특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헌법에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되 법률이 정하는 경우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체포동의안 가결률이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행범이 아닌 경우 회기 중 의원을 구속하려면 범죄의 종류나 경중에 관련 없이 먼저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 헌정사에서 지금까지 국회에 요청된 체포동의안 68건 중 17건만 통과된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 5건 가운데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1건만 가결되었고, 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 및 이번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은 부결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함부로 구속기소하는 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 탄압으로 비쳐질 수 있는 만큼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조건 자기식구 감싸기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범죄의혹이 있는 국회의원을 구속하거나 불구속하는 것은 오직 사법부인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곧바로 구속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체포동의안 가결이 곧바로 구속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례로 지난 3월 국민의힘 하영제 국회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불구속으로 기소된 것이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이 작금의 불체포특권은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정쟁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사법 절차에 정치적 판단을 개입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불체포특권,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토론회에서 불체포특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제시된 다양한 의견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안들을 보면 체포동의안의 의결정족수는 낮추고, 석방요구서의 의결정족수는 가중하며, 표결을 기명으로 하고 해당 국회의원을 표결에서 배제하여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함과 함께 명백한 개인 비리와 권력형 부패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국회법 개정이 필요함을 제시하였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도 예외일 수는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특권의 폐지도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금년 2월 갤럽의 조사에서 불체포특권 폐지에 찬성(57%)한 응답자가 반대(27%)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사실이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당수의 전문가들도 불체포특권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독재정권 출현 등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어찌되었던 그동안 국회에서 동료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살펴볼 때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법률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가 자신의 특권을 버리거나 줄일지는 의문이다. 언제쯤이면 이해관계나 동료 의식을 핑계로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정치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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