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낭만과 현실 사이
[의료칼럼] 낭만과 현실 사이
  • 승인 2023.06.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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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수성아동병원 원장
‘낭만’의 사전적 의미(네이버 어학사전 참조)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이며, 유의어로는 ‘환상’, ‘감성’ 등이 있다. 그러면 ‘낭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선뜻 떠오르지 않지만 사전적 의미를 참고해 보면 ’현실‘이라는 단어가 적절해 보인다.

최근 ‘낭만닥터 김사부3’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즌 1,2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 3가 제작되어 방영중이다. 드라마 인기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각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고, 무엇보다 대체 불가한 완벽한 수술 실력에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만 생각하는 주인공 의사 ‘김사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로 살고 있는 내가 봐도 멋있어 보이는데 일반인이 보기엔 더욱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동안 의료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이 드라마는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보인다. 기존 작품들은 시청자의 볼거리를 위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하거나 마치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을 떠올리듯 병원을 둘러싼 권력 다툼 이야기를 다루는 등 의료문제를 의료제도나 시스템 등의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다루거나 흥미 위주의 이야기 전개를 펼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낭만닥터 김사부3’는 필수의료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증 외상이라는 필수의료의 중요한 한 분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필수의료를 이끌어가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직업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고뇌와 고충뿐만 아니라 필수의료분야 의사들이 어떤 의료 환경과 시스템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왜 많은 의사들이 정말 중요한 필수의료영역에 있는 외상 전문의 지원을 꺼려하는지, 외상 전문의를 선택하고도 왜 중도에 포기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드라마는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김사부에게는 가족이 없고, 정작 본인이 질환(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음에도 쉼 없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 1년 365일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외상 환자를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김사부에게 스스로를 돌보거나 가정을 이루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치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그를 걱정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필수의료 분야의 환경과 시스템은 그에게 이런 것들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최근 인터넷 뉴스를 보면 필수의료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응급실과 관련해 ‘응급실을 전전하다 환자 사망’, ‘응급실 뺑뺑이’ 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보인다. 언론에서는 환자 사망과 필수의료 의사 부족 현상만 부각시킬 뿐,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필수의료 의료진 부족에 대한 근원적인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언론들은 필수의료 의사 부족 이유를 들어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잘못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방 인구가 줄고 있으니 지방에 아파트를 많이 지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지방을 떠나 수도권에 몰리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지방 아파트 수만 늘린다고 해서 지방 인구 감소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같은 이유로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가 시행되더라도 정부의 필수의료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이 없는 한 김사부와 같은 길을 가려는 ‘낭만닥터’들이 많아지기 보다는 ‘현실닥터’들의 수만 증가될 것이 자명하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되는 과정이 어렵고 힘든 데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적은 필수의료를 선택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대정원 확대 정책보다는 응급의료를 포함한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 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고, 기존 의료보험 재정이 아닌 새로운 예산을 확보해 보다 적극적으로 필수의료분야에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낭만닥터’들이 많아지게 하는 지름길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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