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오목천 냇물 얼음을 깨어
양잿물에 삶은 무명 적삼을 치대고 또 치대면서
엄마는
봉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을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
친정 기억의 환한 끄트머리를
뿌리째 뽑아 싹싹 비벼대셨는데
난 지금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다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내 어둠의 정체를 잡아 깨워야 한다며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아직도 그 물때를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 생의 빨래판은 소리만 요란하다
◇정숙= 경산 자인 출생. 1993년 계간지 ‘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시집 ‘바람다비제’, 대구시인 협회상 수상. 2023년 용학도서관 이달의 시인 전시와 강연. 시집 ‘연인, 있어요(2020)’ 외 다수.
<해설> 일상의 생활용품인 빨래판을 통해 자신이 깨우는 건지, 빨래판을 깨우는 건지, 상호 작용을 빨래라는 행위로 일축하면서 시인은 과거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딸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관계인 자신을 대조 혹은 대비의 미학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빨래판은 이 시의 등가물인 것이며, 이야기의 시작이자 또 다른 내 삶의 반성 도구임을 직관하고 있다. “…/ 봉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여자의 한 시절을 방망이로 두드려 흘려보내고”는 엄마의 경우이고, 시인은 어둠의 정체를 잡아 깨워야 한다며,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날카롭게 굴곡진 골마다 박힌 무명을 치대어 훌렁훌렁 흔들고 있는 것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