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공자, 해맑지만 광기어린 추격 ‘쾌감 폭주’
영화 귀공자, 해맑지만 광기어린 추격 ‘쾌감 폭주’
  • 김민주
  • 승인 2023.06.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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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코피노’ 마르코
내내 그를 쫓는 의문의 3인
신세계·마녀·낙원의 밤 이은
박훈정의 만화적 상상력 가득
마냥 어둡지 않은 묘한 캐릭터
새 누아르 탄생의 방아쇠 당겨
1980대 1 경쟁률 뚫은 강태주
중심에 선 ‘리스크’ 김선호 주목
영화-귀공자
영화 ‘귀공자’ 스틸컷. NEW 제공

마르코(강태주)는 홀로 병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는 ‘코피노’(Kopino,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 복싱 경기장을 전전하느라 얼굴에 피가 마를 날이 없다. 그는 오늘도 절실한 눈빛으로 링 위에 올라 상대를 향해 힘껏 주먹질을 한다.

정장을 차려입은 귀공자(김선호)는 마르코를 뒤에서 훔쳐보고 있다. 그는 고급 승용차와 명품 옷을 입고 다니며 능글능글한 표정을 짓지만, 총만 잡으면 눈빛이 변한다. 타깃을 한 번도 놓쳐 본 적 없다고 자부할 만큼 솜씨는 좋다. 총구를 겨누는 곳마다 백발백중이다.

마르코는 한국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안에서 마르코 앞에 귀공자가 나타난다.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그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한국에서 다시 보자고 인사를 하고 떠난다.

한국에 도착한 마르코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숨통을 조여 오는 귀공자를 필두로 마르코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 필리핀에 이어 한국에서 우연히 마르코와 재회한 미스터리한 인물 윤주(고아라)까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은 단 하나의 타깃을 쫓아 모여든다. 이들은 쫓고 쫓기며 서서히 목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광기 속 마르코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귀공자’ 스틸컷. NEW 제공

영화 ‘귀공자’는 오프닝부터 주인공 귀공자의 정체성, 즉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귀공자가 ‘해맑은 광인(狂人)’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장르 영화를 선보이는 박훈정 감독의 신작다운 오프닝이다.

영화 ‘신세계’로 한국 범죄 누아르의 지평을 쓴 박훈정 감독은 ‘마녀’ 시리즈, ‘낙원의 밤’에 이어 ‘귀공자’를 탄생시켰다. ‘귀공자’는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한껏 발휘해 그 어느 때보다 만화적 상상력을 가득 담은 캐릭터의, 캐릭터에 의한, 캐릭터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코를 향한 추격전에 집중한다. 쫓고 쫓기며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도 볼거리다. 맨몸 액션, 카 체이싱, 지붕 위를 오가는 긴박한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극 말미 벌어지는 롱 테이크 액션은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액션의 중심에는 귀공자 김선호가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은 서늘하기만 하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얼굴에서는 광기가 비친다. 누가 봐도 호감인 말쑥한 얼굴에 엷게 띤 미소, 그러나 흔들림 없는 동공과 목적을 알 수 없는 추적에 도통 재단할 수 없다.

특히 기존 영화에서 킬러들이 흔히 멋으로 표현하는 술, 담배 대신 콜라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장면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김선호는 젊은 킬러를 무겁지 않게 완성했다. 박훈정 감독의 판타지가 잘 투영된 귀공자 캐릭터에 김선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연기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1980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자리를 꿰찬 신인 강태주는 복싱선수로 오해할 정도의 근육량과 외모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복싱선수에 어울리는 어깨와 근육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외형을 완성했고, ‘귀공자’에게 쫓기는 자의 치열함을 완벽하게 담아내며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펼쳐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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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공자’ 스틸컷. NEW 제공

한 이사 역을 맡은 김강우는 위압적인 캐릭터를 실감 나게 살렸다. 우아함과 과격함을 동시에 아우르는 건 물론, 장총을 활용한 액션을 막힘없이 해낸다. 22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김강우는 살기 가득한 눈빛, 아무런 감정 없이 목표를 위해 달리는 한 이사를 맡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과시했다.

‘귀공자’의 진입장벽은 청소년 관람 불가의 등급이 아니라 어쩌면 주인공을 맡은 김선호일 수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선호와 그를 안고 간 박훈정 감독의 의지가 ‘귀공자’의 리스크로 작용할지 아니면 새로운 캐릭터를 입고 변신에 성공한 김선호가 리스크를 반전시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영화 ‘귀공자’는 여러모로 신선한 작품이다. 어둡고 퇴폐적이어야만 누아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강렬한 액션을 한 후 함박웃음을 짓거나 묘한 환호성을 지르는 낯선 캐릭터가 ‘새로운 누아르 액션의 탄생’에 힘을 더했다.

마지막 반전을 추측하는 재미도 영화의 큰 포인트다. 반전을 따라가면서 ‘귀공자’를 본다면 추격 액션에서 피식 웃음도 터트리며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쿠키 영상도 잊지 말자.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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