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 인 아웃]모험을 꿈꾸며 깨어나던 그 아침이 그리워
[백정우의 줌 인 아웃]모험을 꿈꾸며 깨어나던 그 아침이 그리워
  • 백정우
  • 승인 2023.07.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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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인디아나존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스틸컷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미장센이 어떻고 카메라가 어떻고 배우의 연기가 어떤지를 논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여 익숙한 플롯과 빤한 결말을 알면서도 영화관으로 향하는, 그리하여 어떤 언어로도 포획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아우라로 둘러싼 그런 영화 말이다.

1985년 5월 덥고 화창했던 그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종로 3가 서울극장 주변을 보여주고 있었다. 9시도 안 된 시간, 이미 수많은 인파가 종로거리를 가득 메웠고 담요와 돗자리로 무장한 채 밤을 샌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징후는 전날 밤부터 있었다. 뉴스에서 일본 개봉 소식과 함께 “우리나라 영화광들도 밤샘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조관람을 위해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대기 줄은 이미 종로2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곧 매진될 거라는 소문이 돌면서 대열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조조는 매진되었고 2회 표를 팔 것이라는 안내원의 말이 나오자 망연자실하거나 더러는 교묘히 접근해오는 암표상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이것이 38년 전 ‘인디아나 존스’가 개봉 현장에 있던 나의 기억이자 개봉당일 극장가의 일반적 풍경이다.

2023년 6월,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했다. 인터넷으로 예매했고, 상영시간에 맞춰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영화관까지 올라갔다. 기다리는 사람도, 설레는 표정도 만날 수 없었다. 상영관엔 열댓 명 남짓의 관객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시리즈 전편을 오마주하며 유머와 체이싱과 스펙터클을 모두 담았다. 해리슨 포드의 말처럼 마지막 시리즈라면, 이 롤러코스터무비는 그 자체로 전설이 될 것이었다. 영화는 끝났고, 기원전 200년 시러큐스 해전에서 빠져나온 존스 박사처럼 나는 다시 동성로의 인파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건축가 승효상은 “최근의 건축은 기능성만을 고집하다 보니 사람이 움직이면서 생각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은 안 보이고 기능만 드러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더 이상 낭만과 설렘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캐러멜 팝콘을 살 것이냐 일반 팝콘을 살 것이냐를 결정하는 정도 아닐까. 게다가 극장들은 담합한 듯이 입장에서 퇴장까지 정교하게 계획된 구역 안에서 움직이도록 관객에게 강요하고 있다. 여기엔 앞선 관람자의 평가가 전달되는 것을 봉쇄하는 기능도 포함된다. 영화가 주는 공통의 체험은 출구가 열리는 순간 휘발되고 만다.

탄식도 함성도 박수도 모두 사라진 상영관.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해리슨 포드와 존 윌리엄스와 필립 카우프만이 스크린 위로 올라갈 때, 나는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본다. 존스 박사는 말한다. “모험을 꿈꾸며 깨어나던 그 아침이 그리워” 나도 인디아나 존스의 중절모와 가죽채찍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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