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도넛 같은 도시] ‘도넛’이 되지 않도록…책임감 갖고 도시 미래 설계해야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도넛 같은 도시] ‘도넛’이 되지 않도록…책임감 갖고 도시 미래 설계해야
  • 윤덕우
  • 승인 2023.07.0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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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에 미친 나라 미국
세계대전 참전용사 식사로 제공
구세군 봉사자들의 헌신 돋보여
6월 첫째주 金 ‘도넛의 날’ 지정
도넛1
도넛의 매력은 달콤하고 짭조름한 이중적인 맛이다.

웰빙 열풍이 불어도, 살찌는 음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간식들중 하나가 ‘도넛’이다. 한입 깨물 때 마다 입안에서 맴도는 그 달콤하고 짭조름한 도넛의 이중적인 맛을 경험하면 누구나 ‘도넛 마니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강한 중독성 때문인지도 몰라도 사회적으로 건강식 수요가 늘어나거나 저칼로리 지향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도넛의 인기는 하락 조짐을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판매량은 제자리를 찾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도넛이 만들어 내는 매력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헐리우드 영화나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 자주 나오는 장면이 미국 경찰이 폼 잡으면서 맛있게 도넛을 먹는 장면이다. 이렇게 미국 경찰이 도넛을 좋아한다는 등식이 성립된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도넛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가격이 저렴하여 인기를 끌었고 특히 그 당시 박봉이였던 경찰들이 식사 대용으로 도넛을 즐겨먹었다. 그 후 1950년대에 던킨 도넛의 창업자 윌리엄 로젠버그는 이 점을 이용해 야간 근무를 서는 경찰 고객을 타깃으로 공략하여 던킨 도넛을 세계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오늘날의 글로벌 프렌차이즈로 키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도넛은 미국이 세계 패권 국가가 되는데 일조한 음식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처음에는 중립국이었으나 독일의 공격으로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침몰하면서 120여명의 미국인 승객이 사망하한 점과 ‘처머만 전보 사건’을 계기로 약 100만명의 미군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들이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면서 당시 구세군 대장이었던 ‘에반젤린 부스’는 11명의 여성 대원들과 함께 미군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도넛을 먹고 싶다는 하소연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그러자 구세군 여성들은 “미군 병사들에게 고향을 맛을 느끼게 하자”는 생각으로 도넛을 만들게 된다.

도넛을 먹은 미군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러나 ‘에반젤린 부스’를 포함한 12명의 여성들이 도넛을 만들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구세군은 도너츠를 만들기 위해 25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쉬지 않고 매일 수천개의 도넛을 만들었다. 이러한 희생과 봉사가 1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그래서 구세군 시카고 지부에서는 1938년부터 ‘도넛 날’을 만들었고, 정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국가 도넛의 날’을 지정하게 된다. ‘도넛 걸스’들의 공로가 국가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그 후로 ‘도넛 걸스’들은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하게 되는데 훗날 ‘팍스 아메리카’는 ‘도넛 걸스’의 탄생으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6월 첫 번째 금요일을 ‘국가 도넛의 날’로 지정하여 축하하고 있는데 사실상 ‘제1,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도넛이 미국 역사에 기여한 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도넛은 19세기 미국에서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중앙에 구멍이 있는 형태의 도넛은 1847년 네덜란드계 미국인 한센 그레고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너츠의 구멍을 낸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선장이었던 한센이 항해를 떠날 때 키의 손잡이에 도넛을 꽂아놓고 먹기 위해 중간에 구멍을 내었다는 설과 구두쇠였던 한센이 선원들에게 나눠줄 빵의 원가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에 구멍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구멍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한센 선장의 아이디어로 도넛의 한 가운데 구멍이 생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속이 텅 비어버린 도넛 효과
도심 지가 급등·소음·공해 탓
상주인구 줄고 상업시설 증가
포퓰리즘 남발로 암울해질 뿐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위상도형을 우리는 흔히 ‘도넛 모양’이라고 부르는데 도시에 나타나는 공동화 현상과 비슷하여 ‘도넛 효과’로 명명된다. ‘공동화 현상’은 처음에는 늘어나는 인구와 도심의 지가 급등 및 각종 공해 등이 원인이 되어 도시 외곽으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도심이 공동화되고 외곽지역이 밀집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도심의 상주인구는 줄지만 도심의 높은 땅값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 상업 시설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많은 유동 인구들이 상권을 유지하면서 도심의 기능을 충족해 준다.

그러나 그후 정치인들의 표퓰리즘 공약들은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는 맹신 하에 장밋빛 도시계획을 남발하고 이에 편승한 토건족들과 땅투기 세력들의 이해관계는 절묘하게 부합하여 끊임없이 외곽 주거단지와 주변 상권들을 만들어 내면서 도시는 확장하게 된다. 외곽 확장에 따른 교통인프라마저 증강되는 결과, 원도심의 상권은 더욱 약해지고 보여주기식 구도심의 재개발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낳아 원주민들은 떠나고 상권은 더욱 위축되어 구도심의 인구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특히 KTX 빨대효과가 심화 되는 상황과 인터넷 거래나 비대면 거래가 나날이 늘어나고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원도심의 기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동 인구가 감소하자 도시의 원도심 상권은 만성적인 불황을 넘어 늘어나는 빈 점포를 마주해야만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특히 수도권으로 인구 유출이 심한 지방 도시들이 더욱 그렇다.

과거의 공동화 현상은 도심에 위치한 직장과 교외 주거지의 거리가 멀어지는 ‘직주 분리’를 만들어 내어 출퇴근 시간 교통난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도심의 슬럼화로 지가가 내려가면 도시 외곽보다 교통 접근성과 병원 등 편의시설이 밀접한 원도심으로 인구가 몰리고 일본의 대도시처럼 외곽에는 빈집이 늘어나는 ‘도심 회귀’ 또는 ‘역교외화’ 현상이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지방 도시들은 아직까지도 정치인들의 장밋빛 공약을 맹신하며 도시 외곽 개발을 위한 교통인프라 구축과 기간시설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비현실적인 장밋빛 공약들이 추진되고 반론들은 묻혀지는 현상들을 목도할 때면 ‘애빌린의 역설’이 생각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여름날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한 가족은 집안 어른의 제안으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애빌린으로 외식을 하러 간다. 모두가 동의하고 길을 나서나 애빌린으로 가는 차 안에는 에어컨이 없어 무척 더웠고 긴 시간을 먼지에 시달려야 했고 멀리 온 가게의 음식 맛도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은 하나둘씩 불평을 털어놓는데, 알고 보니 애초에 애빌린에 가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다른 가족들이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외식에 동의 했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빌린의 역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장밋빛 포퓰리즘 공약’에 집단 동조한 결과물들이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생한 ‘애빌린의 역설’과 같은 것이라면, 그 도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사실 ‘애빌린의 역설’은 조직이나 집단 속에서 나타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불통의 권위적인 리더와 조직에서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있는 조직이라면 의사결정의 과정은 자유로운 의견 표명이나 토론이 아닌 상사의 권위와 부하의 눈치로 결정되기 십상이다. 이런 불통과 눈치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류의 역사는 도시 발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이었고 도시의 쇠퇴는 국가의 쇠퇴였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자유로운 토론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도시의 미래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애빌린의 역설’처럼 도시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의사결정이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라면 그 도시의 미래를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먼 훗날 후손들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나 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넛이 달콤하고 짭조름한 이중적인 맛을 가졌듯이 도시의 미래도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도넛은 세계 대공황 시절에는 구호품이었고 미군들에게는 향수병을 잊게 하고 전투력 상승을 가져왔고 미국 경찰들에게는 훌륭한 간식이 되어 치안 유지에 일조하였다.

도넛 모양이 쇠퇴해가는 도시의 공동화 현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달콤한 도넛이 생각나게 하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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