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능력주의 교육
[대구논단] 능력주의 교육
  • 승인 2023.07.1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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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자녀가 중·고생이라면 은근히 욕심이 생긴다. ‘이놈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고시에도 패스하여, 가문이 업그레이드되면 얼마나 좋을까?’

모임 자리가 시끄럽다.

‘수능 시험에 킬러 문항을 없앤대, 킬러 문항을 가르치는 곳은 서울의 기업형 학원이라는데? 봉화 청송 산골에 킬러 문항 가르치는 곳이 어디 있는가. 올해부터라도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으면 우리 애들에게는 좋은 일이지 뭐. 그야말로 공정한 입시이지, 그런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 세월이 바뀌었는데 시험도 바뀌어야 해, 식당에 가면 AI가 왔다 갔다 하잖아, 창의성 신장 교육이 필요해, 사회도 바뀌고, 학부모도 정신 차리고, 교육도 바뀌고….’ 자녀들의 교육에 관한 토론은 2등이 없고, 모두 전문가이다. 이런 모임의 저변에는 기회의 평등이 깔려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능력주의 교육을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주의 교육은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의 제공에서 출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 교육에도 불평등이 없을 수 없다. 무조건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A와 B가 있다. A의 가정은 부모가 화목한 집안이다. 가족들은 항상 책을 즐겨 읽고, 서로의 의견을 수용하고 존중한다. 굳이 의도적이지 않게 집안 분위기는 학습 여건이 조성된다. B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부모는 성격상 다툼이 많다. 식구들은 쓸데없는 불평이 많고 불안정하다. 공부방이 따로 없고 생활하는 곳이 곧 공부하는 곳이라 시끄럽고 북적거린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습 여건 마련이 어렵다. 이런 기초적인 출발이 불평등한 것이다.

그럼 초일류 국가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은 모든 이에게 교육에서 공정한 기회가 제공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대학은 정문 옆문, 뒷문으로 들어간다. 정문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들어가고. 기부금을 내고 들어가는 것은 뒷문이고, 옆문은 입시 브로커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뒷문보다 옆문이 더 싸다. 미국에 아이비리그(Ivy League)대학이 있다. 미국 북동부에 있는 8개 사립대학이다. 하버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등이 이에 속한다. 미국에도 헬리콥터부모가 있다. 헬리콥터부모들은 아이비리그대학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옆문 뒷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의 대학입시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조선시대는 어떠하였을까? 그때에도 공정한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난제였다. 하나의 예를 보자

도덕성을 가장 중요 덕목으로 강조했던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어떠했는가? 조상들은 인재 등용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과거제도를 실시하였다. 과거시험은 중국 수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제도로 우리나라(고려, 조선)와 일본, 베트남에서 시행되었다. 과거제도 이전에는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천거하여 등용하였으나 과거제도가 실시된 뒤로는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는 학문을 연마하였고 남보다 썩 뛰어난 행실이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뜻을 펼 수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없었다. 각종 이권과 녹봉이 과거시험에 달렸고, 성공과 명예가 과거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이 시대의 남자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이 대장부의 꿈이었다. 따라서 과거시험은 경쟁이 심하였고 부정행위가 난무하였다.

우리말에는 난장판이라는 명사가 있다. 비로 옛 과거 시험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시험장이 여러 사람이 뒤엉켜 떠들고 서로 다투어 뒤죽박죽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행위가 사회문제가 되자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려 지적하기도 하였다. 상소문에는 부정행위로 ‘시험장에 책 몰래 가져가기’ ‘대리시험 치기’ ‘답안지 바꿔치기’ ‘시험장 밖에서 답안지 던져주기’ 등이 있었다. 이런 부정행위에서 권력자의 행태는 퍽 대담하였다. 왕이 사전에 합격자 점지하기, 자기 당파 합격시키기. 시험 감독관 매수하기. 시험지 사전에 빼돌리기 등 권력과 금력이 뒷받침하여, 부정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오늘날 커닝 페이퍼는 초보 수준에 속하였다.

이렇게 공정한 기회 제공은 인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착한 지혜이지만, 능력주의 교육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키기 어려웠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지닌 인재를 육성하는데, 능력주의 교육으로 가능할까?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적 관찰을 통해서 이 명제에 yes라고 답하기에는 매우 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계되는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느냐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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