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을 쓸텐가...학생인권과 교권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데스크칼럼]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을 쓸텐가...학생인권과 교권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 승인 2023.07.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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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뉴미디어부장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만은 ‘또다시’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났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모 초등학교에서 임용 2년차 젊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와야 되겠지만 그 죽음의 이유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인 걸로 알려지며 추모의 물결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쉬쉬하고 있던 사례들이 수면 위에 올라오며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 관심을 갖는다’는 한탄도 들려온다.

직업으로서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표면적인 것만 봤을 때는 방학도 있고 정년도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그들이 힘겹게 내는 목소리를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발간된 ‘초등학교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모음집’은 사흘간 수집된 2천건이 넘는 사례를 담고 있는데 슬쩍 훑어만 봐도 상상을 초월한 기가 막힌 사례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하루에 칭찬을 한번씩 꼭 해달라’, ‘온라인 수업을 위해 선생님이 모닝콜을 해달라’, ‘교사가 과일을 깎아 간식을 제공하라’, ‘내 아이가 장염이니 죽을 끓여먹어라’ 같은 건 아주 소소한 민원으로 보일 정도로 욕설이나 협박, 폭행 등 눈을 의심케 하는 사례들도 꽤 보인다.

사례집을 본 외부인들은 ‘진짜 이런 일이 요즘 학교에서 일어난다고? 정말 힘들었겠네’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교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반응이다. 처음 임용될 때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미래 인재를 길러낸다는 사명감을 갖고 교단에 섰을 교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고소, 고발 안 당하면 다행이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하며 쓴 웃음을 짓는다.

최근, 교권에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비난의 화살이 학생인권조례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교내에서 차별과 학폭 등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수업에 방해되는 학생들을 훈계해도, 발표하기 싫은데 발표를 시켜도, 편식지도를 해도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며,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렸다’며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일도 흔해졌다. 교육청이나 관계기관에 민원이 들어가면 학교에서는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학교에 피해가 오지 않게 알아서 잘 대처해’라며 암묵적으로 요구를 한다.

교권이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래, 아이들은 때려서 가르쳐야 돼.”, “우리 때는 다 맞고 자랐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영화 ‘친구’에서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라며 학생의 따귀를 때리고 넘어뜨리고 짓밟던 교사, ‘더 글로리’에서 학폭 피해자인 동은에게 오히려 시계까지 풀고 마구 폭력을 행사하던 교사. ‘말죽거리 잔혹사’, ‘비트’ 등 영화나 드라마 속 교사의 폭력 행위는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은 풍경이다. 그때로 돌아가서야 되겠는가.

현재는 교권과 학생인권이 양팔 저울처럼 어느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을 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서로 대립되거나 우열을 가리는 개념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또다른 누군가의 인권이 무시되는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된다.

교사들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이 잘못 확대 해석되어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책임만 지우고 그 어떤 권한도 없는 현실을 바꿔달라고, 교사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악성민원이 발생했을 때 교사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해달라고 그동안 눌러왔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권이 무너지면 공교육 역시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공교육이 무너진 사회에 미래는 없다. 교사, 학생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는 너무 당연하고 평범한 논리가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지난 24일, 교육부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중대한 교권 침해 사례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때가 지난 후에 대책을 세우거나 후회하는 일이 소용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더이상 사후약방문을 쓰는 일은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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