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갈수록 가렵다
비누로 씻어내고, 소주와 식촛물에 담가도
발에 견고한 집을 지은 무좀균들은
도무지 방을 뺄 생각이 없다
전셋값이 너무 오른 데다
물가와 교육비까지 올라 먹고 살기도 힘들고
삶에서 발을 아예 빼든가, 배짱이다
긁으면 생채기만 남기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사건들
간지럽다 간지럽다
간지러워서
정말
죽을 맛이다
◇고선주=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계간 ‘열린시학’, 계간 ‘시와정신’ 등에 시와 평론 발표하며 문단 활동.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해설> 있는 것을 그대로 잘 말했는데 시가 안 될 때, 비틀어 말하거나 패러디 또는 역설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시인이 무좀이라는 병증을 데려온 것도 그렇다. 자신이 가려워서 세상도 가려운 것이다. 세상은 발보다 크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말하고, 다 말할 것을, 조금만 말하면서 시종일관 “가렵다”에 집중한다. 가려움의 최소단위는 “간지럽다”지만 간지러움을 참다 못하면 긁게 되고, 피가 나고,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가려움의 자리인 살갗을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무좀이다. 세상이 가려울 때는 무좀 따윈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이미 무좀에 걸렸다면 족자카르타 보르부드르사원에 가서 작은 물고기 입에 발을 잠시 맡기고 올 일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