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도시처녀와 시골총각
[결혼이야기] 도시처녀와 시골총각
  • 승인 2023.08.24 2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숙 리스토리결혼정보회사 대표, 교육학 박사
무더위를 피해 오랜만에 집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일요일 오전 휴식을 달래고 있었다. 점잖은 노신사 목소리를 한 분이 아들의 결혼상담을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 "박사님 같으면 우리 아들의 짝을 반드시 찾아줄 것 같다"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연락했다는 설명과 함께 자신의 얘기를 차근차근 들려줬다. 그는 서울에서 50여 년 동안 직원 백명 이상 둔 중소기업을 경영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큰 병을 발견하고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모든 것을 정리한 후 휴양차 고향인 S시에 내려왔고 몸이 나아지자 소일삼아 축산업을 시작했다. 그것이 점점 규모가 커져 지금은 소만 100마리 이상 되고 지역의 유지였다. 이제는 축산경영을 아들에게 모두 넘기고 요즘은 온통 아들 결혼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아들은 일류대학을 나온 회사원이었으나 아버지의 끈질긴 권유에 따라 시골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는 결혼을 약속한 교제 중인 아가씨도 있었다. 아들은 시골로 내려오면서 교제하던 아가씨도 당연히 시골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수년을 교제한 아가씨는 시골 생활을 거절했다. 그녀는 서울에 있는 부모 형제를 떠나 시골에서 살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아들을 시골로 오게 한 아버지는 결혼문제 등 시골 사정에 대해 너무 몰랐다고 후회했다. 본인 때문에 아들 인생을 그르쳤다며 마음 아파했다.

그는 지역에서 유지 소리를 듣고 지내지만 아들의 결혼문제는 난감하다고 했다. 우선 시골에는 결혼 적령기 아가씨가 없고 도시에서는 결혼해서 시골에서 생활하겠다는 예비신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는 아들 결혼을 위해 축산업은 관리인에게 맡기고 별도의 창업자금까지 밀어주겠다는 약속까지도 했다. 긴 시간 동안 아들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노신사의 얘기를 들은 뒤 조건에 부응하는 아가씨를 열심히 찾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이가 들어 시골의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은퇴후 인생 2막을 꿈꾸는 사람이나 3~40대 젊은이들도 여유로운 생활과 자연환경을 즐기기 위해 농촌살기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는 도시의 팍팍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농촌에서 특작물등을 키우며 야심찬 미래를 꿈꾸는 이들도 더러 있다. 예전에는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현대인은 건강한 먹거리와 자기만족을 위한 삶의 질에 더 중심을 둔다. 자연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찾고 삶의 여유를 찾는 이들이 세대를 아울러 늘고 있다.

하지만 결혼문제만큼은 아직도 거리가 있다. 수십억대의 자산을 보유하며 특작물이나 축산업을 하는 시골의 젊은 자산가들도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경제력을 우선시하지만 시골생활은 선호하지 않는다. 심지어 동남아시아 여성들도 배우자 될 사람이 시골에 산다고 하면 고개를 젓기 일쑤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기계로 농사짓고 모든 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농어촌이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힘든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농촌 총각들이 장가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농어촌은 사정이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런데도 도시여성들은 여전히 농어촌은 교육·의료·문화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도시 엘리트 출신 총각도 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능력 있는 아들이지만 시골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제때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 때문에 애간장이 타는 아버지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갔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다 보니 당연히 결혼 예비신부들도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에 살면 도시의 여러 문화들은 너무나 잘 알고 익숙하지만 살아보지 못한 시골의 환경이나 문화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도시처녀들이 결혼으로 시골생활을 꺼리는 데는 시골이 불편하고 환경이나 조건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시골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시와 농어촌 삶에 대한 서로의 깊은 관심과 이해, 공감들이 근본적인 해결책, 해소책인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것과 꺼리는 것, 생소한 것과 싫은것은 분명 다른 것이어서 구별되어야 한다. 둘을 유사한 것, 같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골 어느 농어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신혼부부들의 로망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