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현충로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대구 현충로 시집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 황인옥
  • 승인 2023.08.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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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 3개월 만에 수천권 보유
판매액 입금되자 시인들 환호
서울 등 타 지역서도 요청 늘어
1차 매진돼도 추가 요구 안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시집 배려
주변 카페와 ‘가을 축제’ 계획 중

 

앞산 카페거리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집전문서점  '산아래 시(詩)' 내부 모습. 황인옥 기자
앞산 카페거리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집전문서점 '산아래 시(詩)' 내부 모습. 황인옥 기자

 

출판은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시인의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시집들은 얼마나 될까? 시집전문 독립서점인 ‘산아래 시(詩)’(대구 남구 현충로7길 6)가 출발한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무더위가 절정을 달리던 날 찾은 서점의 분위기는 무더위의 기세마저 수그러트릴 만큼 차분했다. 책방지기의 정갈한 성품이 소박한 공간에서 묻어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집들이 가판대 위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대형 서점들마저 앞다투어 문을 닫는 세태에 비춰보면 종이책보다 전자책 읽기가 보편화 되어 가는 시대에, 아날로그 서점을 차린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런데도 시 전문 서점을 열었으니, 책방지기의 용기가 새롭다. 그의 용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서점 문을 연지 3개월 남짓 만에 보유한 시집은 260여 종 1,500여권에 이른다.

시집만 취급하는 책방을 열겠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시집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대구경북 지역 시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집들을 모아왔다. 시집은 정가에서 1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된다. 판매액 중 60%는 시인들에게 돌아간다. 서점을 열고 시집이 판매되기 시작하자 시인들은 놀라워하고 있다. 책방에서 자신의 시집이 독자에게 선택됐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인데, 판매액 중 시인의 몫이 통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산아래-시
앞산 카페거리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집전문서점 ‘산아래 시(詩)’ 내부에 설치된 간판.
황인옥 기자

 

‘산아래 시(詩)’는 조용하게 문을 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인천, 울산, 안동 등 전국에서 찾아온다고 했다. 수도권이나 지방에서 시집 전문 서점들이 간혹 운영되고 있지만 ‘산아래 시(詩)’처럼 지역 시인들의 시집만 취급하는 서점은 최초여서 관심을 받고 있다.

수도권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 서점을 찾은 한 방문객은 “시 전문 서점의 경우 잘 나가는 시인들의 시집을 취급하는 경우”라며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집을 판매한다는 콘셉트 자체가 획기적”이라고 평했다.

시집 전문 서점의 출발은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으로 출발했지만, 서울 등의 다른 지역 시인들도 자신들의 시집을 판매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그럴 경우 책방지기는 수용하고 있다. 시인들의 높은 관심으로 서점은 벌써 공간의 한계에 놓여있다. 책이 계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매대도 늘어났다.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기를 꺼리며 책방지기인 자신보다 서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를 희망한다. 책방 운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커피도 판매할 것을 권하지만 “시집 판매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의지다.

‘산아래 시(詩)’의 운영 방식 또한 신선하다. 비록 시집의 수는 많지만 책방지기는 모든 시집이 평등하게 방문객들과 만나기를 희망한다. 시집마다 가장 좋은 공간에서 빛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일 아침 시집들의 배치를 달리하는 열성을 보인다. 심지어 그는 방문객이 시집 추천을 의뢰해도 추천에 응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독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1차로 들어온 시집이 매진돼도 그 시집은 추가요청을 하지 않는다. 아직 한 권도 팔리지 않은 다른 시집에 대한 배려다.

앞산 카페 거리에 위치해 있어 주변 카페들과의 교류도 벌써 시작했다. 주변 카페 운영자들이 ‘산아래 시(詩)’의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행보를 지켜보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을에 ‘시’를 주제로 한 카페거리 축제 프로그램도 벌써 계획 중에 있다. 아직은 섣부른 예단이지만 앞산의 카페 거리가 시와 커피가 흐르는 공간으로 거듭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행보가 큰 물결을 이뤄낼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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