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세수한 아내
청도라지꽃이다
손자 보랴
집안 청소하랴
맛있는 음식 준비하랴
쉴 틈 없는 진종일
아들 며느리
다 모이는데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날 기다리는 아내
마악산 산기슭 사동에서
처음 만나 모셔온
아내는 청도라지였다
첫날 밤
족두리 벗기던 손톱이
지금도 아릿하다
◇원용수= ‘한맥문학’ 수필 등단, ‘문학예술’ 시 등단. 매월당 문학상, 영호남 수필 문학상 수상. 한국문협, 대구문협,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 ‘능수버들’, 시집 ‘무지개 여행’과 최근작 시집 ‘백조의 기분’이 있음.
<해설> 올해로 80 중반에 이른 원용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백조의 기분’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시집 중에서 고른 시 ‘청도라지’는 아내의 사랑을 노래한 시다.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알싸한 도라지 향기가 난다. 수십 년을 마주하고 살았어도 세수한 얼굴을 보면서 청도라지꽃을 떠올리다니! 시 속의 아내 또한 만만치 않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들보다도 잠시 운동 나온 남편을 언제 오나 기다리는 그 마음은 아마도 마악산에서 오래전 모셔 온 청도라지이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첫날밤 족두리 벗기던 손톱이 지금도 아릿하다는 것은, 사랑이 식지 않았고 더 뜨겁게 사랑하겠다는 신호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