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전깃불
[달구벌아침] 전깃불
  • 승인 2023.09.0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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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밤늦게 집 밖을 나가 돌아다닐 일이 없다. 집 밖은 커녕 집안에서도 방문 밖이 어둠의 세계처럼 낯설고 공포스러웠다.

전기가 귀한 시절이었다.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가 전기가 개통된지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처음으로 전깃불이 들어와서 동그란 전구가 하얀색 공처럼 환해졌던 기억이 난다. 촛불이 방안을 모두 밝혀주지 못하고, 촛불 주변만 겨우 밝혀주었다면 전구는 방안 전체를 훤히 밝혀 주었다. 물건도 잘 보이고 얼굴도 잘 보였고 책 글씨도 잘 보였다.

전깃불을 환하게 켜 놓으면 집이 밝아서 좋기는 하지만 전기요금이 많이 나간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기를 켰다. 밥할 때, 밥 먹을 때, 공부할 때, 손님이 왔을 때 등이다. 방안에도 겨우 전깃불을 켜 놓으니 방 밖을 비추어 줄 전구는 당연히 없었다. 밤에 밖을 다닐 때는 하늘의 달이 전구를 대신했다. 밝은 방에서 어두운 밖으로 나가면 처음에는 칠흑같이 깜깜하지만, 1분 정도 지나고 나면 눈이 갑자기 밝아져서 사물이 잘 보인다. 보름달이 떠 있으면 마치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밝았다. 마을 가운데 못 위로 보름달이 높이 솟아 마을을 환히 밝혀 주어 지나다니는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보름달이 없을 때는 길인지 도랑인지 구분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집과 길 사이에 도랑이 깊에 패어 있었다. 비가 오면 도랑물이 흘러 넘쳤고, 여름 장마에는 미꾸라지와 붕어가 떠밀려 오기도 했다. 농사에 댈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길을 가다가 발을 한 발 잘못 디디면 도랑으로 빠져 고꾸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앞과 바닥을 잘 보고 다녀야했다.

집을 나설 때에는 손전등을 들고 다녀야 했다. 한 집에 하나쯤은 다 있었을 것이다. 홍희네 집에도 몸통이 빨갛고 손잡이가 까만 손전등이 방문 앞에 있었다. 나갈 때 필요하면 언제든지 들고 가기 쉽도록 말이다. 손전등을 들고가는 사람 옆에 바짝 붙어서 땅만 보고 걸어야 한다. 동그란 불이 흔들거리며 가야 할 지점으로 한 발 앞서서 인도했다. 어둠 속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불만 왔다갔다 한다. 여러 명이 한 집에 모여 각자 자기 집으로 갈 때 불이 가는 위치를 보며 그 사람이 가고 있는 것을 안다. 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있었다.

불이 없는 깜깜한 집,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홍희는 전깃불이 없어 촛불을 켜고 살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분명 집에 전기선이 깔리고 그 선 끝에 매달린 동그란 전구에서 불이 켜진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새로운 시대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홍희가 태어난 다음해인 1969년 6월 26일, 소련에서 인류 역사상 첫 번째로 달에 인간을 착륙시켰다. 소련의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달을 밟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달에 인간을 착륙시켰다. 또한 세계 최초의 인터넷을 탄생시키는 등 과학기술 방면에서 엄청나게 발전을 했다.

세상은 과학기술이 발전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홍희의 가족은 겨우 촛불에서 벗어났고, 아직도 전기를 마음껏 사용하지도 못했다. 세상은 언제나 발전속도가 다르고,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측면에서도 각자의 처지가 다르다.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홍희는 깜깜한 어둠이 싫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깜깜한 어둠을 밝혀주는 보름달을 사랑하게 되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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